“8억원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지난 14일 오후 경기 안양만양경찰서에 절도 신고가 접수됐다. 70대 남성 A씨는 “오피스텔에 와보니 보관 중이던 현금 8억원이 없어졌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경찰은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수억원의 금품을 갈취한 강력 사건이라고 보고 출동했다.
그런데 A씨 주장은 수상쩍은 게 한둘 아니었다.
A씨는 현금 8억원 출처를 묻는 경찰 질문에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또 A씨가 8억원을 잃어버렸다고 지목한 안양시 안양동의 오피스텔은 3평짜리 남짓한 빈 방이었다. 최근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경찰이 오피스텔 주변 방범 카메라(CCTV)들을 분석한 결과 ‘허위 신고’라는 게 드러났다. A씨가 경찰 신고를 하기 수 시간 전, 자기 몸집만한 가방을 들고 오피스텔을 조심스럽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A씨 동선을 추적한 결과, 가방을 들고 간 곳은 인근 또 다른 오피스텔이었다.
경찰은 이 오피스텔을 수색하던 중 깜짝 놀랐다. 오피스텔 사무실 구석엔 가방, 상자들이 쌓여있었고, 총 28억의 현금 다발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제서야 A씨는 절도 신고가 가짜 신고였다는 걸 인정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가 오피스텔에 숨긴 28억원은 B코인업체 대표의 돈이었다.
A씨는 B코인업체 대표의 장인이다. B코인업체 대표는 지난해 국내 원화 거래가 가능한 거래소에 코인이 상장할 예정이라고 투자자들을 속여 수백억원 가량 피해를 입힌 혐의(사기 등)로 조사 중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딸 부탁으로 돈을 잠시 맡게 됐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B코인업체 대표에 대한 향후 자금 추적에 들어갈 것을 대비해 허위 신고를 미리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가 왜 이런 허위 신고를 했는지를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28억원을 압수하고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23일 A씨를 구속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B코인업체에 대한 경찰 조사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적 있기 때문에, 28억원이 범죄 수익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의 가상 자산 관련 불법 행위 검거 인원은 1177명(258건)으로 집계돼 지난해 검거 인원(902명·257건)을 이미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