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함이 한국·미국·일본 3국의 최초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에 참가하기 위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부산경찰청은 중국인 유학생 3명이 최소 2년간 우리 군사시설 사진을 수백 차례 촬영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9일엔 국가정보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중국인이 검거됐다. 경찰은 이 같은 범행이 중국 당국 등에 의해 사전 기획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 중이다.

부산청은 지난 6월 25일 부산 남구 용호동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 인근 야산에서 드론을 띄워, 정박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을 5분여간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 3명을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루스벨트함은 당시 한·미·일 3국 최초의 다영역 군사훈련인 ‘프리덤 에지’ 참여를 위해 입항해 있었다. 이 유학생들은 경찰 조사에서 “호기심에 그랬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이 휴대전화 등을 조사한 결과, 최소 2년 전부터 부산의 군사시설을 촬영한 사진들이 발견됐다. 당시 띄운 드론에는 5분여 분량 동영상이 있었는데 항공모함과 해군작전사령부 기지 전경이 담겼다고 한다.

이들은 2022년 9월부터 부산 해군기지 인근 야산을 답사하며 드론을 띄울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노트북,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군사시설 관련 사진만 500장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의 휴대전화엔 중국 공안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도 저장돼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중국 공안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출국 정지시키고 대공 혐의 등을 계속 조사할 방침이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30~40대로 현재 부산의 한 국립대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유학생은 한국에서 공부하다 중국으로 가 회사 생활을 한 뒤 다시 왔다고 한다.

정보 당국은 최근 이어지는 중국인들의 국가 보안 시설 불법 촬영이 사전에 기획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9일엔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릉 앞 국정원 관리 주차 구역에서 허가 없이 드론을 띄워 촬영한 중국인이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드론 카메라에는 헌인릉뿐 아니라 국정원 건물 일부도 촬영돼 있었다. 해당 중국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헌인릉에 관심이 많아 드론을 띄웠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자마자 헌인릉으로 직행한 사실이 나타나기도 했다. 경찰은 해당 중국인을 다음 날 일단 석방했지만 출국 정지 조치를 했다. 경찰 관계자는 “향후 소환 등 추가 조사를 하며 대공 혐의점을 살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향후 조사에서 대공 혐의점이 입증되더라도 ‘간첩법’으로 처벌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처벌할 법 조항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행 간첩법(형법 98조)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상 적국은 ‘북한’뿐이다. 즉 현행법대로라면 북한을 뺀 어느 나라에 국가 기밀을 넘겨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간첩죄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

반면 군사기밀보호법은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한 사람이 이를 타인에게 누설한 경우 1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하는 등 처벌 수위가 낮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위반은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경찰 관계자는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심각한 군사기밀 유출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애매하다 보니, 일선에선 중국인을 상대로 장기간 체포한 채 조사를 벌이기 부담스러워 석방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 “출국 정지를 한 채 수사하더라도 증거 인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반면 중국에선 지난해 7월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 이래로 간첩 혐의로 처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개정 반간첩법은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등으로 모호하게 바꿨다. 특히 군사시설과 주요 국가기관 등 보안 통제 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행위도 간첩 혐의로 처벌될 수 있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거주하던 한국인 50대 A씨는 중국 창신메모리 근무 당시 반도체 관련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간첩 혐의로 체포돼 지난 5월 26일부터 허페이의 구치소에 갇힌 상태다. A씨가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한국인이 최초로 반간첩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