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영철 인천 서구 의원이 지난 3일 오전 11시쯤 받은 협박성 이메일. 해당 이메일에 첨부된 사진은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이었다. /이영철 인천 서구 의원 제공

전국의 남성 기초 의원 수십 명이 딥페이크(인공지능으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성범죄 영상물 협박 메일을 받아 경찰이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17일 나타났다. 딥페이크 범죄는 그간 여성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남성 공직자들을 목표로 한 신종 유형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경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찰은 협박 메일 일부가 중국에서 발송된 것으로 파악하고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 등 배후 조직을 추적 중이다. 경찰은 일반인뿐 아니라 유명 정치인·국회의원·정부 공직자 등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범죄가 확산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서울·인천·부산·광주·대구 등의 기초 의원 30명은 최근 딥페이크가 첨부된 협박 메일을 받고 경찰에 신고해 각지 경찰이 일제히 수사에 착수했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피해자는 모두 남성 의원이다. 각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원들 얼굴 사진을 합성한 나체의 남성이 여성과 누워있는 음란 사진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범죄 조직은 이러한 사진을 보낸 뒤 삭제 대가로 5만달러(약 6980만원) 상당 가상 자산을 요구하고, 송금할 수 있는 QR코드까지 보내 접속을 유도했다. 이들은 “당신의 (성매매 등) 범죄 증거를 갖고 있다”며 “어떤 영향이 터지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금전 피해를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영철(35) 인천 서구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 3일 오전 ‘중요한 문서’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구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 의원의 프로필용 사진을 나체 남성 얼굴에 합성한 사진이었다고 한다. 이 의원은 “합성 기술이 조금 더 진화한다면 진짜 오해를 살 만한 사진이 만들어져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정치인으로서 의정 활동 영상, 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일이 많은데,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합성물이 제작돼 향후 선거 등에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박호균(54) 강원도의원도 지난 2일 개인 메일을 통해 딥페이크 협박 메일을 받았다. 그는 “요즘 없던 일도 사실인 것처럼 거짓 뉴스가 판치고 있는데, 딥페이크까지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돈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했다. 김동규(30) 대구 동구 의원은 “지난 2일 협박 이메일을 받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동료 의원 권유로 지난 15일 경찰에 신고했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메일을 받고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의원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 피해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번 사건 배후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을 의심하는 건 협박 이메일 IP 주소 등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협박 메일 중 ‘범죄’를 ‘법죄’로 오기하는 등 중국 등 외국발 범죄 소지가 있다”며 “최근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이 마약, 딥페이크 등 돈만 되면 뭐든 하는 정황이 포착돼 연관성을 조사 중”이라고 했다.

최근 딥페이크 기술이 기존 보이스피싱 등과 광범위하게 결합하는 신종 범죄 양상을 경찰은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인 A씨는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딸이 울면서 소리치는 영상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은 자기들이 딸을 납치했다며 우리 돈으로 8억원가량을 보내면 풀어준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이 영상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만든 딥페이크 영상으로 딸은 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