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증하고 있는 마약, 사이버 범죄 등 수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 20일 예산심사소위원회와 전체 회의를 연달아 열고 정부가 편성한 경찰 특수 활동비(이하 특활비) 31억6700만 원을 전액 삭감해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거대 야당이 상임위 단계에서 밀어붙이는 만큼 경찰 예산 삭감 흐름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일선 수사관들은 “특활비가 사용되는 분야의 범죄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인데, 정작 국회가 수사를 못 하게 막는 꼴”이라고 말한다.
경찰 특활비는 최근 활개 치고 있는 마약, 사이버 성범죄 등 수사에 핵심 예산으로 꼽힌다. 일선 경찰은 위장 수사에 이 특활비를 사용해 접근한 뒤 범죄 조직 윗선을 검거하고 있다. 내년도 경찰청 예산안에 반영된 특활비는 31억원으로 지난 2023년 이래로 3년째 동결됐다.
특히 마약 수사는 경찰 전체 특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최근 나이지리아에 거점을 두고 캐나다·멕시코·남아공 마약상과 연계해 국내에 대량의 필로폰을 밀반입한 마약 조직을 검거했다. 20만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분량인 시가 200억원 상당의 필로폰 6.15kg을 압수했는데, 특활비를 활용한 위장 수사가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됐다고 한다. 일선 마약 수사관들은 “특활비 없이는 마약 상선을 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필로폰 0.03g(1회 투약분) 최근 시세가 10만원인데, 경찰이 마약 조직을 붙잡기 위해 위장 거래하려면 보통 1~3g 샘플 거래를 해야 한다”며 “위장 거래에만 1000만원 이상이 드는 것”이라고 했다.
마약은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마약 사범은 2021년 1만626명, 2022년 1만2387명, 2023년 1만7817명이 검거돼 최근 3년간 1.6배로 증가했다. 클럽·유흥 주점 등 유흥가 일대 마약 확산 추세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지난 9~10월 클럽·유흥 주점 등 유흥가 일대 마약 특별 단속을 벌인 결과, 마약 사범 검거 인원이 184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94명)의 약 2배로 증가했다. 클럽·유흥 업소 등에서 주로 유통·투약되는 케타민·엑스터시(MDMA)의 압수량도 대폭 늘었다. 케타민 압수량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약 6배 증가했고, 엑스터시는 약 2배 증가했다.
특활비는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에도 사용된다. 경찰은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이나 딥페이크물을 제작해 판매하는 피의자를 검거하기 위해 구매자인 척 접근하는데, 이때 특활비가 이용된다. 경찰은 최근 4년간 위장 수사로 디지털 성범죄자 437명을 검거했다. 국회는 최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서만 가능했던 위장 수사·신분 비공개 수사를 성인으로까지 확대하는 성폭력 처벌법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