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공작 총괄 부서인 정찰총국에 미사일 등 첨단 무기 제조 공정에 활용되는 국가 핵심 기술을 넘긴 혐의를 받는 70대 사업가가 최근 간첩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27일 파악됐다. 사정 당국은 최근 수년간 북한이 화성-18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배경과 이 같은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의 관련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 역시 북한의 전방위적 기술 유출 공작이 최근 잦아진다고 판단, 간첩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부는 2014년 8월부터 국가 핵심 기술 장비 설계도를 빼돌려 이메일로 북한 공작원에게 보낸 혐의(간첩법)로 70대 사업가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최근 불구속 송치했다. 국가 핵심 기술은 반도체·자동차·이차전지 등 국내 주력 산업과 관련해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국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기술을 가리킨다. 이번 A씨 사례는 경찰청이 올해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전면 인수한 뒤 첫 간첩 수사의 성과이기도 하다.
A씨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 4조(목적 수행)는 반국가 단체의 구성원이거나 지령을 받은 사람이 군사 기밀 또는 국가 기밀을 탐지, 수집하거나 누설한 경우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 간첩 사건인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사건 피고인들도 국가보안법상 목적 수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중국을 자주 오가며 무역을 중개하는 사업가로 활동했다. 그는 2014년 초 조선족 사업가 B에게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B는 A씨에게 “금속을 절단하는 첨단 장비의 설계도를 건네주면 중국·북한 무역 거래에서 독점권을 보장하겠다”며 “북한 고위 관계자 보증도 받았다”고 했다. 이 독점권을 가지면 수십억 원 상당의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고 한다.
대중 무역 중개 사업가 사이에서 ‘큰손’으로 통했던 A씨는 이 독점권을 따내려고 업계 핵심 관계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넸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 대가로 국내 유명 기업 2곳의 장비 설계도를 입수했다고 한다. A씨는 2014년 8월 설계도를 스캔해 이메일로 B에게 보냈다.
그런데 이 설계도가 고스란히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사정 당국 조사 결과 나타났다. 국가정보원은 B를 수년간 감시·추적했는데, 그가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 C와 수십 차례 만난 사실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B가 사실상 북한에 포섭된 연락책이었던 셈이다.
A씨는 자신이 B에게 설계도를 넘긴 혐의는 인정했지만, B가 북한 공작원에게 설계도를 넘긴 줄은 몰랐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정 당국 관계자는 “A씨가 B와 나눈 대화를 복원하면, A씨가 B씨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설계도를 빼돌렸다는 증거가 여럿 있다”고 했다. 사정 당국은 A씨가 B를 통해 북한 정찰총국의 거액 공작금을 ‘사업 대금’ 명목으로 받았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A씨가 북한에 넘긴 국가 핵심 기술은 미사일 등 첨단 무기 제조 시 금속을 정밀하게 절단하는 장비 및 모터 설계도라고 한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최소 수백억 원 가치에 달하는 기술이 넘어간 셈”이라며 “국내에서 빼돌린 기술을 이용해 북한이 단기간에 무기 기술 개발에서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최근 북한은 최근 고체 연료 ICBM인 화성-18형을 개발했다고 선전하는 등 미사일 기술 첨단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 정찰총국이 물밑에서 국내 기술을 빼돌린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산경찰청 안보수사과는 2016년 4~7월 북한에 국내 태양광 발전 시스템 등을 밀반출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부산 소재 무역 회사에 다니는 50대 사업가를 지난해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업가는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과 접선, 국내산 태양광 설비 1560개를 북한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한 2021년 1건에 불과했던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적발 건수는 2022년 4건, 지난해 2건이었으나 올해 들어 1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