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정문. 11월 10일부터 이어진 공학 전환 반대 시위의 구호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11일 오후 5시.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학교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등 교수진을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 측이 학생들 몰래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아 총학생회가 해명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수업이 있던 처장 2명이 면담에 늦었다. 학생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이 사건을 두고 ‘학교 측의 소통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캠퍼스 점거농성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 측의 지각을 이유로 파행을 선언하기 1시간 전인 오후 4시에 이미 백주년기념관과 캠퍼스를 점거하기 위한 일군의 동덕여대 학생들이 건물로 속속 진입하고 있었다. 오후 4시32분경엔 건물 밖에서 스프레이를 이용해 시위 구호를 유리창 등에 적는 ‘래커칠’이 시작됐다.

11월 12일 오전 동덕여대 율동기념음악관. 이날은 음대 관현악과의 졸업연주회 첫날이었다. 이미 캠퍼스 전역을 점령한 시위대는 음대 건물을 점거하고 출입을 막고 있었다. 이때 한 교수가 무릎을 꿇었다. “우리 과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니, 졸업 연주만 하게 해 달라.” 시위대는 조건을 내걸었다. 관객 앞에서 시위대가 제시한 ‘선언문’을 읽고 지지 발언을 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는 연주회 인터미션 시간에 선언문을 낭독했다. 차마 선언문을 다 읽지 못한 교수는 관객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시위대는 “약속과 다르다, 내일도 하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졸업을 앞둔 음대생들이 눈물을 흘렸다. 악기를 든 채 울며 연주했다. 상아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 힘든 살풍경이었다.

동덕여대에서는 11월 10일경부터 ‘공학전환 반대 시위’를 명분으로 소요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학교 기물을 파손하고 캠퍼스를 점거한 채 수업거부를 종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총학생회와 처장단이 ‘공학전환 논의 중단’을 조건으로 강의실 봉쇄 해제에 합의했지만 본관은 아직 점거 상태로 남아있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캠퍼스 내에 공학전환 반대 문구들이 붙어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기습 점거부터 ‘2000명 거수 투표’까지

동덕여대 사태가 언론의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게 된 것은 남녀공학 전환을 둘러싼 찬반 이슈보다 시위의 폭력성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간 대학가는 물론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가운데서도 더 과격성을 띠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시위를 주도한 측에서 보면 이번 시위로 인해 외부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본질보다 시위의 과격성 여부가 주목을 받았다는 점은 전략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학교 측은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적이 없다. 명분이 없는 시위라 행동이 먼저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학생 대표들은 기물파손 등 행위에 대해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며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캠퍼스 점거와 학내 수업거부에 대해서도 재학생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은 사실상 없었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협박을 받았다. ‘민주동덕’이 동덕여대의 구호다. 그러나 정작 학내 민주주의는 실종된 것이다.

발단은 알려진 대로 ‘공학 전환’ 소문이다. 지난 11월 초부터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동덕여대가 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부터 학교를 성토하는 의견이 익명 커뮤니티 등에서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주말이던 9~10일에는 항의를 위한 ‘근조 화환’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모금은 재학생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성OO씨와 용OO씨의 계좌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자 처장단과 총학생회는 면담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11일 예정된 면담은 파행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이날 강의 일정이 있던 처장단이 면담에 지각한 것을 두고 ‘학교 측의 대화의지가 없다’고 주장하며 면담장을 박차고 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 측이 면담장에 늦게 온 것은 주지의 사실로 보이지만, 총학생회의 주장처럼 1시간 늦었다고 하더라도 남녀공학 전환이 정말 중요한 이슈였다면 그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대화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총학생회는 처장단과의 면담이 파행으로 이어지자 ‘총력대응위원회(총대위)’ 출범을 공표하고 캠퍼스 점거를 선언한다. 이 과정에서 12일까지 시위대에 의해 건물과 경내 도로에 무분별한 래커칠이 이뤄졌으며, 초대 이사장의 흉상에 떡볶이나 계란 등 음식물을 투척하거나 야구방망이로 흉상을 내려쳐 파손시키는 등의 행위가 벌어졌다. 특히 11월 12일 백주년기념관에서 예정됐던 기업초청 취업박람회도 시위대에 의해 박람회장 기물 상당수가 파손되고 행사장이 봉쇄돼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피해액만 최소 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물품 대여 업체가 항의하자 시위대는 “총대위가 지휘한 것이 아니라 분노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 총대위는 이날 ‘수업 거부’를 선언했다. 11일에서 12일 사이 시위대는 이미 성북구 동덕여대 월곡캠퍼스, 종로구 대학로캠퍼스, 강남구 청담캠퍼스를 모두 봉쇄했다. 학교는 이틀 뒤인 14일 모든 수업을 온라인 녹화 강의나 실시간 화상 강의로 전환했다. 15일 학교 측은 학내 사태로 인한 피해 추정 금액을 최소 24억원에서 최대 54억원으로 추산한 결과를 발표했다. 20일에는 학생총회가 개최됐다. 총학은 이날 오후 운동장에서 학생회칙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학생총회를 소집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총회에 정족수 650여명을 넘긴 재학생 1973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재학생 전체(6564명)의 약 30% 수준이다. 이 자리에서 ‘공학 전환’ 반대에 거수한 인원은 1971명으로 비율은 99.9%다. 방식은 비밀투표가 아닌, 비표를 치켜드는 공개 거수투표였다. 동덕여대에서는 몇 년 전부터 보였던 투표 방식이지만, 수천 명 단위의 투표가 거수로 이루어지는 것은 권위주의 국가 말고는 찾기 어렵다.

이후 양측은 ‘공학 전환 잠정 중단’이라는 합의점을 도출해 본관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 점거가 해제됐다. 그러나 이날 총학은 손해배상과 관련해 “우리가 낼 수 없다”며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했다. 이후 총학과 학교는 25일 다시 한번 면담에 돌입했지만 소득 없이 결렬됐다.

동덕여대 설립자 조동식 선생 동상 아래 부분이 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문구와 래커칠로 뒤덮여 있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공학 전환, 공식 추진한 적 없는데…

그렇다면 학교 측은 정말 공학 전환을 추진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동덕여대는 임시 연구조직인 대학비전혁신추진단을 지난 9월 6일 발족하고 개별 단과대학의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때 유학생 유치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는데, 공학 전환도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애초 동덕여대에서는 이전부터 공연예술대학 등 일부 단과대의 교수와 재학생을 중심으로 공학 전환이라는 발상이 언급되고는 했다. 이는 설립 초기인 2000년대부터 있었던 것인데, 연기훈련이나 연극의 캐스팅 등에 남성의 참여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주간조선의 취재에 따르면 특히 공연예술대학과 디자인대학의 최근 성과지표가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대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공학 전환 안건이 포함됐다. 9월 출범한 혁신비전추진단의 9월 27일 1차 회의, 11월 5일 2차 회의에서 두 번 안건으로 다뤄졌다. 모두 공개회의로 약 20명의 교수가 참석했는데, 이때 참석했던 교수들 입을 통해 재학생들에게 소문이 퍼지며 살에 살이 붙었다. 공학 전환 여부는 11월 12일 교무위원회에 상정돼 다시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학교 측은 이때 검토가 긍정적이라면 여론을 수렴할 계획이었다.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의 초기 조직도. 총학생회장이 동아리인 ‘사이렌’의 하급자로 명시돼 있다.

돌연 폭력시위… 투표 없이 수업거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시위가 불과 일주일도 안돼 소요사태로 번졌다는 점이다. 당초 총학생회도 11월 7일 목요일 입장문에서 “(공학 전환이) 공식적인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총학생회를 포함한 시위대는 주말이 지나자마자 돌연 교정을 점거하고 기물파손 행위를 벌인다. 총학생회가 11일 월요일 오후 처장단과 면담을 진행하던 시점, 이미 백주년기념관 등의 건물을 점거하고 학교 전역에 대한 파손행위를 벌였다. 학교와 제대로 된 소통의 장이 열리기도 전이었다.

시위에 돌입하고 나서도 학생들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위의 일환인 ‘수업 거부’가 재학생의 의견 수렴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 총대위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수업 거부는 11월 12일부터 실험, 실습, 토론, 발표 등 수업의 유형에 관계없이 ‘모든 수업’에 대해 진행한다”고 공지했을 뿐이다.

공학 전환에 찬반을 묻는 투표 역시 학과 단체 메신저 방에 올라왔다 지워지거나, 아예 투표도 진행되지 않은 곳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학생은 지난 11월 22일 주간조선과 만나 “학과 차원에서 수업 거부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는 아예 없었다”며 “단지 수업 거부를 진행하겠다는 단과대학별 공지가 내려왔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학과 대표가 공학 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찬반 투표를 올리긴 했다”면서 “반대하는 친구들의 항의가 거세 투표가 1분 만에 사라졌다”고 전했다.

총학생회도 이미 이러한 절차적 하자를 인지하고 있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지난 11월 18일 자 동덕여대 총학생회와 전체 학생 간담회 속기록에 따르면 한 참석자가 수업 거부를 지속할 것이냐고 물으며 “특정 단과대학은 수업거부 투표도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총학생회가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한다”며 “수업 거부를 모든 이들에게 강제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총학생회 측은 이어진 유사한 질문에 대해 “건물들의 점거가 해제되면 자율성이 부과되고 수업 거부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

특정 단과대에서는 ‘수업 거부는 강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고지를 하기도 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11일에서 12일 사이 월곡캠퍼스, 종로구 대학로캠퍼스, 강남구 청담캠퍼스 등의 강의실과 실습장이 시위대들에 의해 막히거나 난장판이 됐기 때문이다. 익명의 재학생은 “강의실 문에 청테이프가 발라져 있고 래커칠이 되어 있었다”며 “이런 난장판을 치운 학우들도 있었는데, 그러자 익명 커뮤니티에서 ‘다시 (테이프) 붙이러 갑니다’라고 인원을 모집해 다시 강의실을 봉쇄하더라”라고 증언했다.

수업 거부를 주도하는 시위대가 수업에 참여하는 재학생들에 대한 압박을 모의하는 글. photo 동덕여대 제보자

“수업 들은 사람들 두고보자”

시위대가 수업 거부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을 위협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강의실이 모두 봉쇄돼 대면수업이 불가능해지자, 교수진은 주로 온라인 강의를 통해 수업을 이어갔다. 시위대는 이때 온라인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비난여론을 조성하고, 강의에 접속해 수업을 방해하거나 ‘캡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기간 동안 동덕여대 에브리타임(익명 커뮤니티)에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강의 접속 링크를 공유하며 ‘수업거부 테러를 해 달라’는 식의 게시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줌(화상강의) 수업 링크를 적어주면 시위 참가 못하는 이들이 분탕치겠다’는 게시글에는 강의 접속 링크가 담긴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접속하지 말라”며 “(교수의 화상강의 공지에) 체크한 분들 다 캡처하고 있다”고 협박성 글을 올린 이도 있었다.

시위대는 수강생이 아니면서도 온라인 강의에 접속해 ‘수업거부’라는 텍스트를 걸어두고 화면을 끄고 있거나, 심지어는 소리를 지르며 훼방을 놓고 도망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익명의 동덕여대 재학생은 “우리 수업의 화상수업 링크가 유출됐고, 다른 수업들에서도 종종 그랬다”며 “수업 들어가는 애들 다 ‘캡처’하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위대의 행태를 미루어 신변의 위협이 느껴졌고, 화상 수업에 들어가는 것조차 눈치가 많이 보였던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혐오 동아리가 주축?

이렇다 보니 애초부터 시위를 주도하는 총력대응위원회의 구성부터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총대위의 구성은 재학생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기구라기에는 대단히 기형적이다. 주간조선이 단독 입수한 총력대응위원회 내부 조직도에 따르면, 11월 11일 설립 당시 위원장은 총학생회장이 아닌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를 자처하는 ‘사이렌’의 교육팀장 이OO씨(컴퓨터학 전공)다. 그리고 일주일 뒤 조직도에는 총학생회장이 공동위원장으로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이렌의 공식 X(트위터)에 따르면 총력대응위원회는 사이렌 측이 제안해 만들어진 것으로, 위원회 구성원 17명 가운데 4명이 이 동아리 소속이다. 총학생회는 2명이 참여하고 있고 나머지는 각 단과대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응위원회 설립을 사이렌이 주도했고, 총학생회는 여기에 얹혀가는 모양새로 볼 수 있다. 이 기구가 총학생회 차원에서 어떠한 추인 과정을 거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이러한 과정이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11월 11일 자 중앙운영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사이렌은 평소 트랜스젠더 등 남성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적 주장을 해왔다. 사이렌의 인스타그램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를 두고 ‘자기중심적 선택’이라고 표현하고, 특히 “여자의 종속적 지위를 흉내내고 마조히즘적 욕구 해소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음대 졸업연주회 사건’에서도, 교수가 낭독을 강요받은 선언문을 작성한 주체가 사이렌이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당시 선언문에는 여성을 ‘Women’이 아닌 ‘Womyn’으로 표현하는데, ‘men’이 단지 ‘남성’을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피할 정도로 배타적이다. 시위 과정서 나온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또는 “차라리 폐교하라” 등의 극단적 표현들이 나온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전례 없는 시위, 학생들만 피해

유사한 사례를 겪은 타 여대에서도 이처럼 강경한 방식은 전례가 없다. 성신여대가 2018년 남녀공학 전환을 목표로 교명 변경을 검토했을 당시, 성신여대 중앙운영위원회는 재학생과 휴학생 등을 대상으로 찬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중앙운영위원회는 2360명 중 96%인 2267명이 반대한 결과를 학교 측에 제시했고 결국 해당 안건이 무산됐다. 덕성여대 또한 2015년 취임한 이원복 전 총장이 남녀공학 전환을 취임식에서 언급하며 공학 전환을 추진했으나, 학생회장단 주도로 구성된 ‘확대운영위원회’가 반대 여론을 형성, 의견을 전달했고 결국 무산됐다.

2016년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논란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도 시위 과정에서 성명서를 낸 뒤 본관을 점거하긴 했으나 교내 기물 파손이나 래커칠은 없었다. 당시 이화여대 학생단은 총장의 부정 의혹들을 정리한 문서를 공론화하며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작가는 이에 대해 “기성 사회운동세력과 단절되어 앞세대가 오래 축적한 시위의 방법론을 학습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작가는 “기존 운동권들도 폭력 사용을 절제하고 법적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쓰는 등 ‘노하우’가 있었다”며 “겉으로는 과격하더라도 물밑에서는 협상을 하는 등 ‘장치’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위는 문제해결을 위한 소통의 수단임을 망각하고, 미디어를 통해 과격한 수단(래커칠, 점거농성)을 사용하는 것만 학습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시위 양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동덕여대 폭력시위 반대 재학생팀 ‘STEP’ 측은 주간조선에 “이번 시위는 단순히 남녀공학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과격 시위가 아니다”라며 “일군의 시위자들과 외부세력들의 선동에 의해 집단 광기로 번진 폭력시위”라고 지적했다. 또 “교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연대를 강요하며 억누르고 개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덧붙였다.

주간조선이 만난 동덕여대 재학생들은 학내 사태 이후를 더 걱정했다. 구성원들이 서로 입은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 익명의 재학생은 “여대 내의 끈끈함이란 것도 그전에는 느끼고 있었는데, ‘연대’라는 허명 아래 이 사건으로 그런 것이 사라졌다”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재학생도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데, 이 상황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주간조선은 수업 거부를 비롯한 시위의 비민주성에 대해 동덕여대 최현아 총학생회장에게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반론을 들으려 했으나 답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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