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함양산청사건 양민희생자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이 열린 지난 11월 1일 경남 산청군 산청·함양사건추모공원에서 한 유족이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함양군

6·25전쟁 당시 국군의 인민군 토벌 작전 과정에서 경남 산청·함양 지역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지 73년 만에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부산고법 민사5부(재판장 김주호)는 ‘산청·함양 사건’ 피해자 유족 15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정부는 유족들에게 총 18억2583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사건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국군 제11사단이 지리산 일대의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산청·함양 지역 주민 705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당시 경남 거창에서도 주민 719명이 희생됐다.

유족들은 1996년 제정된 ‘거창 사건 등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에 따라 희생자 유족으로 인정받았다.

일부 유족은 작년 6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는 이유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3년이다.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뜻이다.

1심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활동을 끝낸 2010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잡아도 소멸시효 3년이 지난 뒤 청구권을 행사한 게 된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당시 국회와 대통령에게 6·25전쟁 전후 사건에 대한 배상 관련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

반면에 2심인 부산고법 재판부는 2022년 대법원 판결을 기준 시점으로 잡았다. 대법원은 2022년 11월 산청·함양 사건과 비슷한 거창 사건에 대해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같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법 재판부는 “이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산청·함양 사건은 3년 소멸시효가 의미가 없게 된다”며 “이 대법원 판결 선고일을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김재생 산청·함양 양민 희생자 유족 회장은 “1996년 당시 유족 732명 중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은 164명에 불과하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유족들의 고통을 달래줘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