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이 사망하면서 ‘위험한 공항’이란 국제적 오명(汚名)을 덮어쓰게 된 전남 무안국제공항은 개항 이래 최대 위기에 놓였다. 무안공항이 사활을 걸어온 추가 국제선 유치 역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7년 개항과 함께 광주공항의 국제선 기능만 넘겨받은 무안공항은 거의 전적으로 국제선에만 의존해 온 탓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이용객이 ‘0명’을 기록한 적도 있다.
한국공항공사 항공통계에 따르면, 2019년 89만명에 달했던 무안공항 이용객은 2020년 11만명으로 급감한 후, 2021년과 2022년에는 2년 연속 ‘0명’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승객을 태우고 활주로를 뜨고 내리는 항공기가 한 대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2021·2022년 이용객 ‘0명’
무안공항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뒤부터는 해외여행이 점차 늘면서 2023년 23만명, 2024년에는 34만명(잠정)까지 이용객을 회복했지만 아직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89만명)의 절반도 안 된다. 그나마 최근에는 일본, 중국, 동남아 등지로 전세기를 띄우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무안~방콕(태국) 노선뿐만 아니라 도쿄·오사카·나가사키(이상 일본), 장자제(중국), 타이베이(대만), 다낭·나트랑·푸꾸옥(이상 베트남), 코타키나발루(말레이시아), 시엠립(캄보디아), 비엔티안(라오스) 등지에도 항공기를 띄웠다.
특히 무안공항에서 방콕을 비롯해 나가사키·타이베이·코타키나발루 등지에 비행기를 띄우는 제주항공은 무안공항 최대 큰손이었다. 사고가 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지난 12월 8일 개설한 노선으로, 무안공항 개항 이래 열린 첫 정기 국제선이다. 그간 무안공항은 비(非)정기 전세기에만 의존해 왔다. 제주항공은 무안공항의 유일한 국내선인 무안~제주 노선에도 항공기를 띄운다. 202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재명 대표가 “무안공항을 아시아나항공 거점공항으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밝히기도 했지만, 호남 기반의 아시아나항공조차 사업성이 낮은 무안에서 철수한 지 오래다.
여기에 조류충돌 위험공항이란 인식이 확산돼 국내외 항공사들이 신규 취항을 꺼리면 더 이상 회생방도가 없다. 유정칠 경희대 생물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뉴욕의 한 공항에서는 조류퇴치 관리부실을 이유로 공항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돈을 물어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활주로 착륙 직전 조류충돌을 당한 제주항공 측이 무안공항 관리주체인 한국공항공사나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도 있는 셈이다.
무안공항에 미칠 후폭풍을 감안해 ‘무안공항 참사’ 대신 ‘제주항공 참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광주·전남을 핵심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주당 항공사고대책위 역시 “제주·무안 등의 지명을 쓰지 말라”는 공지를 한 상태다. 반면 “사고의 본질은 공항의 구조적 문제”라며 “제주항공 참사가 아니라 무안공항 참사가 맞는다”(이호 전북대 법의학 교수)는 주장도 있다.
‘위험한 공항’이란 인식이 국내외에 확산하면 무안공항 회생을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사업비도 공염불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월부터는 500억원 가까운 사업비를 들여 기존 2800m 길이의 활주로를 3160m로 늘리는 공사도 진행 중이다. 공항활성화를 위해 미주·유럽까지 날아갈 더 큰 항공기 취항이 필요하다는 지역사회 요구에 따라서다. B737-800 같은 동남아까지 취항 가능한 협동체 ‘C급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데 필요한 활주로 길이는 1800m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에는 기획재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주에서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고속철도 2단계(광주송정~목포) 사업도 무안공항을 경유하도록 노선을 최종 확정했다. 현재 호남고속철도는 광주 이남에서는 기존 호남선 철도를 이용해 나주를 경유해 거의 직선으로 목포로 향한다. 하지만 무안공항 경유를 위해 나주에서 급격히 ‘S자’로 노선을 비틀어서 무안공항을 거쳐 목포로 향하도록 한 것이다.
기형적인 노선으로 인해 고속선 건설에도 불구하고 광주~목포 간 단축되는 시간은 단 2분이다. 국가철도공단에 따르면, 오는 2025년 말 개통예정인 무안공항 경유 호남고속철 2단계 건설에 투입된 사업비는 무려 2조3372억원에 달한다. 국내 모든 공항 중 유일하게 고속철과 직접 연결되는 무안국제공항역은 허허벌판 위에 들어서는데도 지방공항 최초 지하역사로 설계됐다.
군 공항 이전 여부가 통합 걸림돌
하지만 광주공항과의 조기통합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조치들은 막대한 사업비에도 그 효과가 의심된다. 광주공항은 무안공항 개항 이듬해인 2008년 무안광주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국제선이 옮겨간 이후에도 국내선은 무안에 넘기지 않았다. 광주공항에는 저가항공사(LCC)만 취항하는 무안공항과 달리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항공사(FSC)도 취항한다. 그 결과 광주공항은 국내선만 운항하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무안공항(89만명)의 두 배가 넘는 202만명이 이용했다. 무안공항이 이용객 ‘0명’을 기록한 2021년과 2022년에도 각각 215만명과 206만명이 광주공항을 이용했다.
현재 광주공항의 주력 노선은 고속철도나 고속도로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바다를 건너는 광주~제주 노선이다. 자연히 노선을 광주에서 무안으로 넘긴다고 해도 큰 폭의 항공수요 감소는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 전망이다. 다만 국내선과 동시에 군(軍)공항을 넘기길 원하는 광주광역시와, 군공항은 제외하고 국내선만 받길 원하는 전남도 및 무안군의 입장이 가장 큰 변수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는 2023년 12월에야 비로소 “호남고속철 2단계 개통시기에 맞춰 광주공항 민항기능을 무안공항으로 이전한다”는 합의에 서명한 상태다.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호남고속철 2단계(광주송정~목포) 개통예정은 오는 2025년 말이다.
다만 여기에도 ‘군공항 이전 문제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면’이란 단서조항이 달려 이전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군공항 이전에 결사반대하는 무안군 대신 함평군이 군공항 유치에 나선 것도 변수다. 전남의 기초지자체 중 광주 군공항 유치에 나선 것은 함평군이 유일하다. 이상익 함평군수는 2023년 5월 “군공항 이전사업을 통해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함평 발전의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전기가 마련할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무안공항 위 함평군에 또 다른 공항이 들어서며 중복투자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