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은 지난 19일 헌정 사상 네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라임자산운용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했다. 71년 헌정사에서 수사지휘권은 지난 2005년 딱 한 번 발동됐지만, 추 장관은 최근 넉 달간 세 번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이처럼 잦은 수사지휘권 행사의 출발점은 한결같이 ‘사기꾼들의 일방적 폭로’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20.10.21./뉴시스

추 장관은 지난 6월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검찰의 거짓 진술 강요로 조작됐다”고 주장한 재소자 한모씨 참고인 조사를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이 아닌 대검 감찰부에서 진행하라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 감찰부장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 소속의 판사 출신으로 조국 전 장관이 추천한 인물이다.

재소자 한씨는 ‘기업 사냥’ 범죄와 각종 사기·횡령 등의 전과로 징역 2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한씨는 한 전 총리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구치소 수감 당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검찰로부터 거짓 진술을 강요당했다는 정황을 옆에서 전해 듣거나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고발 -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법치주의바로세우기 행동연대’ 이종배 대표가 추미애 법무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추 장관이 꾸린 수사팀이 추 장관 동료 정치인의 비리를 수사해서 내놓은 결과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로 있는 로펌 변호사와 열린민주당 인사, 친여(親與) 인터넷 매체들이 한씨를 교도소에서 접견한 뒤 그의 주장을 옮기며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추 장관도 이에 합세해 일개 참고인 조사의 주체를 중앙지검이 아닌 대검으로 바꾸는 데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활용했다.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검 감찰부는 이렇다 할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추 장관은 채널A 사건 수사팀이 윤 총장에게 보고도 하지 말고 감독도 받지 말라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또다시 발동했다. 7000억원대 불법 사기 혐의로 징역 14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금융사기범 이철 전 VIK 대표가 채널A 기자로부터 협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이철씨와 만난 적도 없는 사기·횡령 전과 5범의 ‘제보자X’ 지모씨가 이씨의 ‘대리인’으로 나서 채널A 기자를 접촉했으며 그 내용을 전달받은 MBC는 채널A 이동재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간의 ‘검·언 유착’이라고 보도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수사지휘권 행사한 과정

생면부지 이씨와 지씨를 연결한 이는 민병덕 의원 소속 로펌의 또 다른 변호사였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됐다는 걸 내세워 채널A 사건 지휘에서 윤 총장을 배제시켰다. 하지만 독자수사권을 부여받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팀은 이 전 기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한 검사장을 공범으로 적시하지도 못했다.

두 사건 모두 일단 ‘사기범’이 등장하고 친여 매체가 그 주장을 보도하면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라임자산운용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라임의 정·관계 로비 의혹의 핵심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윤 총장이 야권 인사 수사에 부정적’이란 취지의 내용 등이 담긴 옥중 편지를 공개했고, 추 장관은 사흘 만에 윤 총장이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지난 9월 21일 작성된 김 전 회장의 편지는 변호인이 한 달간 가지고 있다가 검찰 국정감사 기간에 맞춰 공개했다. 김 전 회장은 1000억원대의 횡령 혐의 말고도 사기, 배임증재, 범인도피, 무고, 업무방해 혐의도 받고 있다. 여권은 김 전 회장이 지난 8일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을 할 때까지만 해도 ‘질 나쁜 사기꾼’이라고 했다가, 이후 야권 인사 로비와 윤 총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김 전 회장 옥중 편지가 공개되자 ‘의인(義人)’으로 대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