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대망’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했다가 무단 번역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출판사 대표에게 대법원이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동서문화동판 대표 고모(80)씨의 상고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2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고씨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동명 소설을 ‘대망’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해 1975년 국내에 출간했다. 일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보호 규정이 미비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2005년 고씨가 `1975년 판 대망'을 일부 수정해 재출간하면서 벌어졌다. 1996년 저작권법이 개정돼 번역 출간 시 원작자나 한국어판 발행권자의 허락을 받도록 하는 조항이 생긴 데다, 1999년 다른 출판사가 일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제목의 번역본을 펴내고 있었다. 고씨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쟁점은 ’2005년 판 대망'이 ’1975년 판 대망'과 다른 새로운 저작물에 해당하는지였다. 고씨 측은 “오역이나 표기법 등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해 새로운 저작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출판사에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같은 취지로 고씨와 출판사에 각각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5년 판 대망을 새로운 저작물로 볼 수 없다며 고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2005년 판 대망은 1975년 판 대망을 유사한 범위에서 이용했지만 사회통념상 새로운 저작물로 볼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