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조선DB

해외에서 성폭행 피해를 입은 대학생 A씨가 대사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언론 인터뷰를 했다가 대사관 직원 B씨로부터 10억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당했다.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8일 인천지법 민사11부(부장 정창근)는 허위 내용의 인터뷰를 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해양경찰 출신 사건사고 영사 B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처분했다.

A씨 측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2018년 8월 서울의 유명 국립대에 재학 중이던 A씨는 학업 관련 유럽을 방문했다가 터키 이스탄불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하루를 묶게 됐다. 숙소 주인과 그 지인이 준 음료를 건네받아 마신 A씨는 의식을 잃었고,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린 A씨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현지 경찰에 신고해 진술하고 귀국했다. 한국에서 사건의 수사 진척 상황이 알고 싶었던 A씨는 이스탄불 영사관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A씨는 당시 이스탄불 주재 사건사고 영사로 파견됐던 B씨와의 소통 과정에서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됐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B 영사는 “성폭행하는 걸 눈으로 봤느냐. 왜 기억을 못 하느냐”고 이야기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이미 A씨가 범인으로 특정하고 온 가해자의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며 “그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현지 변호사 정보를 요청하니 터키어로 쓰인 명단을 보내왔다. A씨는 대사관의 도움을 포기하고 스스로 3000만원을 들여 현지 변호사를 선임한 후 터키에 다시 방문해 수사 상황을 살폈다.

A씨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젊은 여성 여행자들이 저와 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를, 또 해외 공관의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언론 취재에 응했다”고 말했다. 2019년 3월 ‘해외에서 성폭행을 당한 대학생이 현지 경찰 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이 영사에게 2차 피해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왔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이듬해 B영사는 A씨가 허위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 고소와 함께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일로 A씨가 성폭행 피해를 입고 심각한 자살 충동을 수반한 트라우마와 우울증 등으로 치료받아온 의료기록들이 법원에서 공개됐다. B영사는 해당 언론사에 대해서도 역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A씨의 인적정보가 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2년이 지나 형사 사건은 불기소 처분이 났고, 10억원의 민사소송 역시 기각됐다.

A씨는 “끔찍한 성폭행 피해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를 잊어버릴 틈도 없이 다시 한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사기관과 법원을 오가며 마음을 다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이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기각 판결에 관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A씨 측 법률대리인 이은의 변호사는 “피해자는 사건 발생 후 피해를 오롯이 혼자 짊어져야 했고, 언론에 사연이 알려진 후에는 거짓말을 했느냐고 추궁받으며 10억원의 청구 소송을 당했다”며 “힘든 과정을 이겨낸 A씨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편 터키 경찰은 A씨의 몸에서 현지 남성들의 유전자를 검출했으며 이를 토대로 가해자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