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신정훈 기자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을 폐기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 손상)로 기소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비서관이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3년 11월 이 사건이 기소된지 9년만에 나온 판단이다.

서울고법 형사 8부(재판장 배형원)는 9일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에게 각각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당연히 생성, 보존돼야 할 기록물을 삭제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다만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이고, 국정원에도 회의록이 보존돼 내용이 확인 가능했던 점은 유리한 정황”이라고 했다.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논란은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졌다. 정상회담 회의록이 대통령기록관에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새누리당은 회의록이 고의로 은닉·폐기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노무현 청와대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회의록 초본을 삭제했다며 2013년 11월 이들을 기소했다. 하지만 1·2 심은 회의록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통령기록물로 인정되려면 대통령 결재가 있어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업무지원시스템에서 결재 상신된 문서관리카드에 첨부된 회의록 파일을 열어 “내용을 한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적었기 때문에 ‘결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반전을 맞았다. 2020년 12월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회의록 초본은 노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었는지 여부는 결재권자가 서명을 했는지 뿐만 아니라 문서에 대한 결재권자의 지시사항, 결재 대상 문서의 특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 회의록의 내용을 열람하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는 취지로 ‘문서처리’ 및 ‘열람’ 명령을 선택해 전자문서서명 및 처리일자가 생성되도록 했다”고 밝혔다.1,2심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열람했을 때 결재를 한 것으로 봤다. 그에 따라 이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환송됐고 14개월간의 심리를 거쳐 유죄가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