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체납으로 압류된 계좌에 실수로 송금한 사람에게 은행은 체납 세금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중소기업 A사가 한 시중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 반환 소송의 상고심에서 은행에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A사는 2017년 11월 거래처로 보내야 할 돈 1억여원을 B씨의 계좌로 잘못 보냈다. A사가 B씨에게 “돈을 잘못 보냈으니 돌려달라”고 하자, B씨도 승낙했다. 그런데 B씨의 계좌는 세금 1450만원 체납 때문에 세무서가 이미 압류한 상태였다. 향후 입급될 돈까지 모두 압류 대상이 됐다. B씨는 계좌가 개설된 은행에서 받은 대출 2억1700만원도 연체하고 있었다. 2개월 뒤 은행은 B씨 계좌에서 대출 원금 중 1억여원을 상계(相計) 처리했다. A사가 실수로 B씨 계좌로 보낸 돈을 은행이 B씨의 빚을 갚는 데 쓴 것이다. 그러자 A사는 은행을 상대로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모두 ‘은행이 A사에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B씨 계좌가 압류되지 않은 상태라면 은행이 A사에 돈을 돌려줘야 하지만, 제3자인 세무서가 압류했다면 은행이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2013년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B씨 계좌가 이미 압류됐다고 해도, 은행은 세무서가 압류한 B씨의 체납 세금액 1450만원 범위 내에서만 A사 돈으로 상계할 수 있다”면서 “이 범위를 벗어나는 상계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거나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라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은행이 A사가 B씨에게 잘못 보낸 1억여원 중 1450만원을 제외한 8600여 만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라며 “A사와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을 일정 수준에서 구제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