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원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았어도 ‘스토킹 범죄’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는데 이번에 대법원이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피해자에게 수십 차례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문구를 남긴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여성 B씨에게 1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통화를 차단당했다. 그러자 A씨는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빌려 B씨와 한 차례 통화했고, 이후 28차례 전화를 더 걸었지만 B씨가 받지 않아 B씨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 문구가 남았다. A씨는 B씨에게 ‘찾는 순간 너는 끝이다’ ‘다 죽인다’ 등의 문자메시지도 보냈다고 한다.

1심과 2심은 A씨의 ‘문자메시지 전송’은 유죄로 봤다. 그러나 ‘부재중 전화’에 대해서는 1심은 스토킹 범죄라고 봤지만 2심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스토킹처벌법에 규정된 ‘전화를 이용해 음향·글·부호를 보내는 행위’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2심 재판부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더라도 B씨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A씨가 음향을 보냈다고 볼 수 없고, B씨 휴대전화에 표시된 ‘부재중 전화’ 문구는 전화기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해 A씨가 보낸 글이나 부호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스토킹처벌법의 목적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가 표시되게 해 불안감,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는 실제 통화가 이뤄졌는지와 상관없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