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7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경기도 남북교류협력사업에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경기도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자신의 아내가 변호인 해임신고서를 제출한 데 대해 “내 의사가 아니다”라고 25일 재판에서 밝혔다. 그러자 이 재판에 출석한 이 전 부지사 아내는 방청석에서 “정신 차려라”고 소리쳤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신진우)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구속 수감돼 있는 이화영 전 부지사, 방용철 전 쌍방울 부회장 등이 출석했다.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혐의를 받고 있다.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은 2019년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이재명 대표가 도지사이던 경기도를 위해 총 800만달러를 북한 측에 건넸다는 내용이다.

이날 갈색 수의를 입고 등장한 이 전 부지사는 변호인 없이 혼자 피고인석에 앉았다. 전날 그의 아내 A씨가 이 전 부지사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해광’ 소속 변호인들에 대한 해임신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해광은 이 전 부지사가 지난해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부터 최근 재판까지 이 전 부지사의 변호를 담당해왔다. 최근에는 쌍방울의 대북송금과 관련한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조사에도 입회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재판에서 재판부가 “(아내의) 변호인 해임 신고에 대한 피고인(이화영)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하자, 이 전 부지사는 “집사람이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변호사 해임은 제 의사가 아니다”라며 “제가 수감 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잘 몰랐는데 판사님께 죄송하게 생각한다. 해광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아내 A씨가 전날 재판부에 이 전 부지사의 해광 변호인단 해임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이 전 부지사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재판 당사자인 이 전 부지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변호인을 해임할 수 없다. 이 전 부지사의 해광 변호인단은 지난 18일 재판에서 재판부의 요청을 받고 “그동안 이 전 부지사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 대납 요청 여부에 대해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검찰에) ‘쌍방울에 방북을 한번 추진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면서 이 전 부지사의 ‘입장 변화’를 인정한 바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뉴스1

그러자 재판 도중 아내 A씨가 갑자기 이 전 부지사를 향해 “(변호인이) 없었던 일을 얘기했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외쳤다. 이어 A씨는 “(변호인이) 이 전 부지사 본인 의사와 반대되는 변론으로 하기 때문에 제가 해임시킨 것”이라고 했다.

재판장이 A씨를 진정시킨 뒤 발언 기회를 주자 A씨는 “지금 변호사에게 놀아났다고 할 정도로 화가 난다”며 “본인(이 전 부지사)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보고한 적 없다고 분명히 밝혔는데, 변호인이 의견서를 내 해임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저 사람은 (구치소) 안에서 (상황을) 모르는 것 같다. 자기가 얼마나 검찰에 회유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답답하다”며 “정신차려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이게 ‘이화영 재판’인가 ‘이재명 재판’인가”라며 “왜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번복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또 “만약 당신이 그런 판단을 하면 가족으로 해줄 수 있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고 싶다”며 “당신 혼자 알아서 재판 치르고 어떤 도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라”고도 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A씨의 탄원서를 공개했다. A씨는 탄원서에서 “남편이 고립된 채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신체적 고문보다 극심한 심리적 압박은 군사독재 시대의 전기고문만큼 무섭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1일 이 전 부지사는 옥중 자필 편지를 통해 “김 전 회장에게 방북도 신경 써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일 뿐, 방북 비용 대납을 요청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재차 뒤집었다.

이날 재판이 열리기 직전에도 A씨는 입장문을 내고 “남편은 옥중편지로 인하여 변호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검찰에 출석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의 압박과 회유가 이어졌다”며 “변호인단 중 검찰에 유화적인 일부 변호사들의 태도에 대해 우려가 커졌다”고 변호인 해임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또 “본인이 하지 않았다고 밝힌 옥중 서신과 다르게 비공개 재판에서 변호인이 말한 혐의 내용 일부 인정은 사실과 다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도 했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뉴스1

재판부는 “변호인 선임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피고인의 효력에 따라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께서는 입장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진행해달라”고 했다. 이날 재판에 변호인 없이 혼자 출석한 이 전 부지사가 ‘변호인을 해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히면서 재판은 변호인 출석하에 오후에 다시 열기로 했다. 그러나 변호인 측이 “이 전 부지사와 가족의 입장이 정리 되면 출석하겠다”는 이유를 들며 오후 재판에도 불출석해 재판은 그대로 종료됐고, 당초 이날 예정됐던 김 전 회장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에 대한 증인신문은 다음 재판으로 미뤄졌다.

이에 검찰은 “재판에서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며 “수사 기록이 외부에 유출된다던지, 또 증인신문 녹취록이 갑자기 SNS에 공개 게시된다던지, 갑자기 변호인이 불출석하고, 피고인이 법정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재판마저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외부 세력에 의한 재판의 독립성 훼손 등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위해 재판장께서 특별하게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도 했다.

법조계에선 “이 전 부지사와 아내 A씨의 입장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 법조인은 “이 전 부지사가 아내의 변호인단 해임 조치를 법정에서 거부했다”며 “이 전 부지사가 아내의 입장과는 달리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또 번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