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에게 이른 새벽과 공휴일 근무를 지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자 채용을 거부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배려 의무를 다하지 않아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스1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도로관리 용역업체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승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지난 2008년부터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하면서 어린 자녀 2명을 양육했던 여성 A씨이다.

A씨가 원래 일하던 도로관리 용역업체는 출산·양육을 배려해 보통 매월 3∼5차례 배정되는 ‘오전 6시∼오후 3시’의 초번 근무를 A씨에게 면제해줬다. 또 주휴일과 근로자의날을 휴일로 인정하면서, A씨 등 일근제 근로자들이 공휴일에 연차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17년 4월부터 새로운 도로관리 용역업체가 들어섰고, 수습 기간을 3개월로 정한 근로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새 업체는 A씨에게 초번·공휴일 근무를 지시했다. 그러자 A씨가 항의했으나 “공휴일 휴무는 불가하다”고 답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두 달간 초번·공휴일 근무를 하지 않았다. 새 업체는 A씨의 근태를 이유로 ‘기준 점수 미달’이라며 2017년 6월 A씨에게 채용 거부 의사를 통보했다. 중앙노동위는 A씨에 대한 회사의 채용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정했지만 회사가 불복하면서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은 A씨의 승소로, 2심은 새 업체의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채용 거부 통보 6년 6개월 만에 새 업체의 채용 거부 통보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A씨가 육아기 근로자라는 사정만으로 근로계약과 취업규칙상 인정되는 초번, 공휴일 근무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면서도 “회사가 육아기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아 채용을 거부했다고 볼 여지가 상당하므로 채용 거부 통보의 합리적 이유,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녀고용평등법 19조의5는 사업주가 육아기 근로자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근로 시간을 조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회사는 A씨가 육아기 근로자로서 (자녀를) 보육시설에 등원시켜야 하는 초번 근무 시간이나 공휴일에 근무해야 할 경우 양육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수년간 지속한 근무 형태를 갑작스럽게 바꿔 보육시설이 운영되지 않는 공휴일에 매번 출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녀 양육에 큰 저해가 되는 반면 (그렇게 할) 회사의 경영상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업주에게 소속 근로자에 대한 일·가정 양립 지원을 위한 배려의무가 인정된다는 것을 최초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사업주가 부담하는 배려의무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