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검은 18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서 불기소됐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과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재기 수사 명령’을 서울중앙지검에 내렸다고 밝혔다. 이전 수사가 미흡하니 더 수사하라는 것이다. 세 사람은 지난 정부 검찰이 2021년 4월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불기소해 논란이 됐다. 이날 재기 수사 명령으로 33개월 만에 추가 수사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이 사건은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 내 여덟 부서가 지난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송철호씨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2020년 1월부터 총 15명이 기소됐고 이후 3년 10개월 만인 작년 11월 1심에서 12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문 전 대통령의 30년 친구이며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송씨를 당선시키려고 야당 후보이던 김기현(현 국민의힘 의원) 당시 울산시장에 대한 ‘하명(下命) 수사’를 경찰에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민주당 내 경쟁 후보에게 다른 자리를 제안하며 경선 포기를 유도한 ‘후보 매수’ 혐의도 있다.

이날 서울고검은 “기존 수사 기록, 공판 기록 및 최근 1심 판결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하명 수사’와 ‘후보 매수’ 혐의 부분에 관해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문재인 청와대가 거부해 확인할 수 없었던 문건 등을 확보하기 위해 조만간 대통령기록관 압수 수색에 나설 전망이다.

조국 전 민정수석과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에 대한 재기 수사는 ‘하명 수사’ 혐의와 관련 있다. 검찰은 4년 전 수사에서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원 문모씨가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에게 입수한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비위 첩보를 가공했고, 이 첩보가 이광철 당시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백원우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파악했다. 이어 백 비서관이 첩보를 박형철 당시 반부패비서관에게 전달해 경찰 수사가 진행되도록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하명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검찰이 확보했다. 1심에서 송철호씨와 황운하(현 민주당 의원)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송병기씨가 각각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백원우 전 비서관, 박형철 전 비서관도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임 전 실장은 ‘후보 매수’ 혐의와 관련해 재기 수사를 받게 됐다. 송철호씨가 2017년 10월 청와대에서 임 전 실장을 만났고 그 직후 송씨의 당내 경쟁 후보이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 측에 “불출마하면 원하는 자리를 챙겨줄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의 업무 수첩에서 ‘임동호를 움직일 카드가 있다고 조국 수석이 얘기함’이라는 메모도 나왔다. 이와 관련, 서울고검은 조 전 수석, 송철호씨와 송병기씨에 대해서도 재기 수사 명령을 내렸다. 다만 후보 매수에 대해서는 1심에서 한병도 전 정무수석이 무죄를 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 정부에서 기소 자체에 어려움을 겪었다. 친문(親文) 검사로 꼽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소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지검 수사팀이 기소 하루 전에 세 차례에 걸쳐 기소 의견을 올렸지만 이 지검장이 결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대검 간부들과 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들을 불러 회의를 열어 기소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때도 이 지검장만 기소에 반대했다고 한다. 기소 이후에도 수사팀이 추가 수사를 했지만 이 지검장이 사건을 계속 뭉갠 것으로 알려졌다. 기소 전후로 법무부가 수사팀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인사 학살’도 2차례 벌어졌다. 민주당도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 수사권을 모두 박탈하겠다고 했다. 결국 윤 대통령이 2021년 3월 총장에서 물러났다.

그 한 달 뒤인 2021년 4월 검찰이 임 전 실장, 조 전 수석과 이 전 비서관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면서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증거나 정황이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지난 정부가 이 지검장을 통해 사건을 뭉개면서 기소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자 당시 총장이던 윤 대통령이 이미 확보된 증거만으로 우선 기소하게 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조 전 수석은 이날 페이스북에 “끝도 없는 칼질이 지긋지긋하다”고 썼다. 임 전 실장은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검찰이 ‘전 정부 죽이기 수사’를 총선에 이용하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