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의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손 검사장이 당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전달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법원은 손 검사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없다고 보고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고발사주' 의혹으로 기소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가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31일 선거법 위반 및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손 검사장에 대해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위반해 책임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손 검사장은 선고 직후 “사실관계와 법률관계 모두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발 사주 의혹은 2021년 9월 대선 국면에서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겨냥한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시작됐다. 2020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었던 손 검사장이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두 차례에 걸쳐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였던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 의원으로부터 텔레그램으로 고발장을 전달받았던 조성은씨가 언론에 이를 폭로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수사에 나섰다.

이 사건 공소장 등에 따르면, 손 검사장이 2020년 4월 3일 김웅에게 건넨 ‘1차 고발장’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최강욱 전 의원, 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언론인 등 13명이 피고발인으로 적시됐다. 고발장에는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찰총장)과 김건희 여사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 등이 담겼다. 같은 해 4월 8일 전달된 ‘2차 고발장’에는 최 전 의원이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이 자신의 법률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없는데도 인턴으로 일했다고 선거법상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공수처는 손 검사장이 두 건의 고발장을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다고 보고 2022년 5월 기소했다. 손 검사장이 1‧2차 고발장을 전달하면서 ‘제보자X’로 불리는 지모씨의 개인정보가 담긴 관련 판결문을 넘겨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개인정보보호법 및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을 위반한 혐의도 적용됐다. 손 검사장은 해당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김 의원에게 직접 건넨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과 김 의원 사이에 고발장을 전달한 ‘제3의 인물’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최초로 제보한 조성은씨./뉴스1

재판부는 이날 “손 검사장이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서 고발장 작성·검토를 비롯해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 정보 생성·수집에 관여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 검사장이 김 의원과 공모해 고발장 등을 조성은씨에게 전달했다고 본 것이다. 손 검사장과 김 의원 사이에 고발장을 전달한 ‘제3자’는 사실상 없다고 봤다.

그러나 손 검사장이 이 고발장을 전달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하고 전달한 것만으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 객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각 고발장은 (4월) 선거일 전까지 수사기관에 접수되거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조씨가 고발장을 다른 관계자에게 전달하거나, 미래통합당이 고발장을 선거에 활용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조씨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행위만으로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손 검사장이 김 의원에게 지씨 실명 판결문을 전달해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은 직무상 취득한 비밀인 ‘제보자X’ 지씨의 실명 판결문 등을 김 의원에게 전달해 누설했다”고 했다. 이외에 개인정보보호법 및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다만 최 전 의원이 피고발인으로 등재된 2차 고발장의 내용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지 않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손 검사장은 검찰과 검사를 공격하는 제보자에 대한 인적 사항 등을 누설한 것이어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이어 “손 검사장은 (수사 정보를) 당시 여권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고발하는데 활용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비록 결과적으로 선거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이 무겁다”고 했다.

다만 “손 검사장이 처벌 전력이 없고 20년간 검사로서 성실히 복무했으며, 지씨 등의 사생활 비밀의 자유 등 권리 침해 정도가 매우 무겁지 않다고 평가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손 검사장은 “사실관계와 법률관계 모두 수긍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했다. 공수처도 “1심 판결문을 받는 대로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