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그룹 뇌물 의혹을 받는 이화영 킨텍스 대표이사(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photo 뉴시스

대전고등법원 모성준(48·사법연수원 32기) 판사가 최근 출간한 저서 ‘빨대사회’에서 “국회가 국가의 전체 수사권한을 토막 내면서 국제적 사기 범죄 조직에 날개를 달아 줬다”고 비판했습니다. 검겅 수사권 조정, 검수완박 등 정치권이 추진했던 국가 수사 시스템 변경이 범죄자의 수사와 처벌을 어렵게 했다고 정면 비판한 것입니다.

특히 모 판사는 이 책에서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 312조 1항을 두고 “사기 범죄 조직 수괴에게 수사기관의 모든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현직판사가 비판한 법개정, 내용 보니

형사소송법 312조 1항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개정 전에는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돼 있음이 피고인의 진술에 의해 인정되고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 증거능력을 부여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개정 전에는 ‘말한 대로 씌여 있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개정 후에는 ‘말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해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검찰에서 혐의사실을 자백하면 법정에서 부인하더라도 검찰 피신조서를 근거로 유죄를 인정했는데 법 개정 후에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즉 이 조항은 검찰 피신조서 또한 경찰 피신조서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혐의를 부인하면 ‘휴지’가 돼버리게 하는 내용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입니다. 검찰 피신조서에 대해 경찰 피신조서보다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던 조항을 폐지하면서, 수사기관의 자백을 무력화한 효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 조항에 대해 현직 판사가 ‘수사기관의 모든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준 것’이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사실 법 개정의 표면적인 취지는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에 의존하지 말고 재판에서 증거조사를 하자는 ‘공판중심주의’이겠지만, 실제로는 수사기관의 자백을 무력화하고 실체진실의 발견을 어렵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검찰 자백 부인한 이화영, 법개정의 수혜자?

수사기관에서 자백하다 법정에서 부인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 전 부지사는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 등 뇌물 및 정치자금 3억여원을 받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과 공모해 2019~2020 5차례에 걸쳐 800만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해 북측 인사엑 전달한 혐의 등으로 재판중입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해 검찰이 수사중인 혐의로, 800만달러 중에는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방북비용 300만 달러도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5일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작년 6월 검찰에서 대북송금을 이재명 당시 지사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한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전 부지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현대아산이 참여한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 대표에게 “기업이 껴야 방북이 수월하다”고 보고했고 이 대표도 “잘 진행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고 진술한 내용입니다. 이는 이 전 부지사가 자신의 혐의를 자백함과 동시에 이재명 대표의 인식 여부에 대해서도 진술한 의미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는 작년 9월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이씨 아내가 법정에서 남편을 향해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변호인이 민주당 측 인물로 교체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 전 부지사측은 이날 공개된 검찰 진술 내용에 대해서도 “검찰의 회유와 압박으로 허위진술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변호인 조력을 받고 자발적으로 진술했다” “검찰이 묻지도 않았는데 답했다”는 입장입니다.

이 전 부지사의 진술내용은 현행 형소법 312조 1항에 따르면 그의 유죄 증거로 쓸 수 없습니다. “사실과 다른 허위진술”이라며 내용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법정에서 그 내용이 공개됐을까요, 바로 공범인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 덕분입니다.

이 전 부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방 부회장은 혐의를 자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공범인 이 전 부지사의 피신조서를 ‘자신에 대한’ 유죄 증거로 사용하는데 동의했습니다. 그에 따라 검찰이 방 부회장에 대한 증거조사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의 피신조서 내용을 공개한 것입니다. 물론 내용 공개에도 불구하고 이 전 부지사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개정 형사소송법 312조 1항은 이처럼 검찰에서 자백한 부분도 법정에서 뒤집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효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자백한 내용을 판사가 알더라도 정작 유죄 증거로는 쓸 수 없는 모순도 초래합니다. 현직 판사가 ‘수사기관의 모든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한 것은 이 사건이 보여주는 모순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법 없이도 사는 법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05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