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남성이 한국인 아내에게 빼앗겼던 자녀 2명을 소송 끝에 4년여 만에 되찾은 것으로 30일 전해졌다. 우리 대법원이 ‘부모 가운데 정당한 양육권을 가진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돌려보내라’는 예규를 이달부터 시행한 데 따른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존 시치(54)씨는 미국에서 한국인 A씨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2019년 11월 A씨가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다. 당초 A씨는 “한국에 사는 친언니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이후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아이들도 내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시치씨는 아내를 상대로 “자녀들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미국과 한국에 냈다. 부모 중 한 명이 정당한 이유 없이 아이를 빼앗아 다른 나라로 가면 원래 살던 국가로 아이를 돌려줘야 한다는 ‘헤이그 국제 아동 탈취 협약’이 근거가 됐다. 미국 법원은 시치씨에게 양육권이 있다고 인정했다. 한국 법원도 “A씨가 동의 없이 아이들을 데려왔다. 남편에게 자녀들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2022년 2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시치씨는 2022년 두 차례 법원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자녀를 돌려받으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A씨가 강하게 반발했고 네 살, 다섯 살 자녀들도 울먹이며 “아빠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대법원 예규는 법원 판결에 따라 아이를 찾아가려 할 때도 현장에서 자녀가 “싫다”고 하면 데려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됐다. 미국 국무부가 2022~2024년 연속으로 한국을 ‘헤이그 협약 불이행 국가’로 분류한 것이다. 시치씨 사연은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시치씨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 도와달라”고 말하는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헤이그 협약 집행을 위한 예규’를 새로 만들고 이달부터 시행했다. 새 예규에서는 ‘현장에서 자녀가 거부하면 데려갈 수 없다’는 조항을 뺐다. 또 아동 전문가를 투입해 자녀를 내주지 않으려는 부모를 설득하고, 아이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했다.

시치씨도 새 예규에 따라 지난 15일 두 자녀를 데려갈 수 있었다. 반발하는 A씨를 법원 공무원이 제지했다. 그 사이 시치씨가 아동 전문가와 함께 아이들을 안고 A씨 집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시치씨는 두 자녀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 같은 방식으로 외국 부모들이 자녀를 되찾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 5년간 외국에 있는 부모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자녀를 돌려달라며 국내 법원에 낸 1심 소송은 36건이다. 이 가운데 14건(39%)에서 “자녀를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시치씨를 대리한 김재련 변호사는 “새 예규가 적절하게 시행되면 한국이 ‘아동 탈취 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