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회생법원. /조선일보 DB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신제품이나 아이디어의 발명자로 특허를 출원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16일 미국 국적 개발자 스티븐 엘 테일러씨가 우리나라 특허청을 상대로 낸 특허출원 무효 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번 사건은 AI 개발자인 테일러가 자신이 개발한 다부스를 발명자로 한 채 2020년 특허출원서류를 특허청에 제출하며 시작됐다. 당시 특허청은 발명자를 AI가 아닌 사람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테일러가 이를 거부해 특허 출원 무효 처분을 내렸다. 테일러는 이에 반발해 2022년 12월 한국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6월 “현행법상 사람만이 발명자로 인정된다”며 “발명이나 그 결과물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AI 개발자인 인간이 책임을 회피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 등이 있다”는 이유로 테일러 측이 낸 소송을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했고, 고법도 이날 비슷한 취지로 기각했다.

재판부는 “특허법 제33조 및 제42조의 해석에 비추어 특허법상 발명자가 자연인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함은 제1심판결에서 본 바와 같다”며 “AI의 출현 및 발전 정도, 현재까지의 기술 수준, AI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에 비추어 현재의 특허법 규정만으로 AI를 발명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정당한 법률해석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했다. 이어 “향후 AI의 발명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면 이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테일러는 2018년 영국 특허청에도 식품 용기와 점멸 조명에 대한 두 가지 특허를 출원하며 “나는 이 발명품과 관련된 지식이 없고, 내가 개발한 ‘다부스’가 지식을 학습한 뒤 발명품을 스스로 창작했다”는 이유로 발명자에 자신의 이름 대신 다부스를 기재했다. 영국 특허청도 테일러에게 “실존 인물을 발명자로 등재해야 한다”며 수정을 요구했지만, 테일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영국 대법원은 AI가 발명자로 특허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인간만을 저작권자나 특허권자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예술, 저술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이나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되면서 AI의 저작권과 특허권 논란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저작권·특허권의 정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추세다.

김시형 특허청장 직무대리는 “작년 IP5(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5개국 특허청) 청장회의를 통해 주요국 특허청뿐 아니라 산업계에서도 AI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재산권 이슈에 초미의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면서 “향후 특허청이 IP5,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등과의 AI 관련 특허제도 논의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국제적으로 조화된 특허제도를 정립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