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모습./뉴스1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는 16일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 18명이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각하하는 항고심 결정문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의 파업 등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며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신청 당사자의 자격과 긴급하게 정지시켜야 하는지, 신청인들의 손해와 공공복리 사이에 어느 것이 중요한지 등을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이 사건 신청인들은 ‘의대 증원 처분’의 당사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의대생들에게는 신청인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대 재학생 신청인들의 신청은 헌법과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기 때문에 신청인 자격이 있다”고 했다. 의대생들은 의대 증원이 시행되면 학습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앞서 1심 재판부는 “의대 정원 증원 처분의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長)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신청 자격이 없다”며 각하했다.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신청인 자격이 있는 의대생들에게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막기 위해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했다. 바로 각하하지 않고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는 신청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힌 것이다.

다음으로 재판부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지, 개인의 손해와 공공복리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한 결과, 의대생들의 요청을 최종 기각했다. 재판부는 “현재 우리나라는 의료의 질 자체는 우수하나,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 의료·지역 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의대 증원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대생들의 손해 때문에 이 사건 집행을 정지할 경우,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 회복 등을 위한 필수 전제인 의대 증원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리·교육·복지장관이 함께 대국민 담화 - 16일 서울고법이 의료계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한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가운데) 총리와 이주호(왼쪽)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국민 담화 발표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장련성 기자

재판부는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논의를 이어 온 끝에 증원 처분을 한 점, 향후 의사 수급 현황에 따라 의대 증원 규모도 조절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번 판단의 근거가 됐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정부의 2000명 산출 근거는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충분치는 않다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 측에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를 최소화해 달라”는 당부도 전했다. “2025년 이후 의대 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할 때도 매년 대학 측 의견을 존중해 대학 측이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자체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의대 교수에 대해선 “헌법상 교육받을 권리와 같은 차원에서 교육할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고, 전공의들에 대해선 “2025학년도 신입생들과 함께 교육 내지 수련을 받을 일이 없어 이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의대 입학이 확정되지 않은 수험생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이날 법원 결정에 대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 있지만 오늘 법원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 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2025학년도 대학 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면서 “당초 예정대로 5월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입학 전형 시행 계획을 승인하고, 대학별 모집 인원을 발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정광재 대변인은 “법원의 판결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증원 정책이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의대 증원은 국민적 요구이자 공공·필수·지방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시대적 개혁 과제”라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법원의 판단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을 확인해줬을 뿐 매년 2000명씩 증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계 측 법률 대리를 맡은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 재항고 절차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며 “서울고법에 올라간 나머지 6개 항고 사건에 대한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