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두산타워'./두산

화력발전소 건설을 비판하며 두산중공업(現 두산에너빌리티) 건물에 세워진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칠한 혐의를 받는 환경활동가들에 대해 “재물을 손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만 모든 ‘스프레이 낙서’가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0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2명에 대해 벌금형을 내린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1‧2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활동가들이 조형물에 스프레이를 분사한 것이 재물손괴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들은 2021년 2월 두산중공업의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참여를 비판하며 경기도 성남시 두산중공업 건물 앞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뿌리는 시위를 벌인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스프레이를 뿌리고 짧은 기습 시위를 벌인 뒤 미리 준비해 간 스펀지로 녹색 스프레이를 닦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에 연행되면서 스프레이를 모두 닦아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활동가들은 조형물의 문자 부분에 물로 쉽게 세척할 수 있는 수성 스프레이를 뿌렸고, 그 직후 미리 준비한 물과 스펀지로 조형물을 닦아냈다”며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효용을 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스프레이가 남은 부분에 대해서도 “조형물의 문자를 지지하는 대리석의 극히 일부”라며 “조형물이 야외에 설치돼 자연스럽게 오염‧훼손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활동가들의 행위가 조형물을 ‘손괴’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어 “공소사실 중 재물손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단에는 재물손괴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한다”고 했다.

다만 대법원은 재물손괴를 무죄로 판단한 이 판결이 모든 ‘스프레이 낙서’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은 터널에 스프레이를 이용해 ‘기후위기’라는 글자를 써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선 벌금 1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 3월 확정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지워지기 어려운 ‘래커(유성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한 점, 낙서 이후 글씨를 지우려 하지 않은 점 등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