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뉴스1

30일 ‘사상 최대의 재산 분할’을 인정한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을 두고 법조계는 하루 종일 들썩였다. 가사소송 전문 한 변호사는 “재산 분할 액수가 다소 늘어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큰 금액이 인정될 줄은 몰랐다”고 했고, 대형 로펌 한 변호사는 “이걸 인정해도 되나 싶은 부분들이 많은 판결”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이 판결의 특징은 재벌가의 이혼 소송에서 오너가가 아닌 배우자에게 상당한 재산 형성 기여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전 재벌가 소송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 때 법원은 이 사장의 재산 2조여 원 중 주식 형태로 보유하던 1조9000억여 원은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임 전 고문의 기여도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 전 고문은 결국 141억원만 분할받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2003년 배우 고현정씨와 이혼하며 위자료 명목으로 15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의 재산 분할이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지낸 고(故) 강신호 전 동아제약 회장도 2006년 아내와 이혼하면서 현금 53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장 일가가 보유해온 회사 주식은 분할 대상에서 빠졌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연합뉴스

반면 1990년 민법에 재산 분할 청구권이 도입된 뒤 보통 가정의 이혼 소송에서는 전업주부들의 몫이 넉넉하게 인정되는 추세다. 특히 혼인 전부터 소유하거나, 혼인 중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이 분할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십수 년간 집안일을 해온 주부가 외벌이 배우자와 재산 분할을 하면 5대5로 나누는 것이 원칙처럼 됐다”며 “사회적으로 가사 노동의 가치가 높아져 법원도 주부의 기여도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사나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높게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부터다. 남편이 사업을 일구며 불린 재산의 절반을 전업주부가 이혼하며 분할받는 판결들이 속속 나온다. 그 이전엔 전업주부의 기여도가 30% 정도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2016년 서울가정법원에서 다뤄진 30대 중반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는 남편이 결혼할 때 시댁에서 증여받은 주택의 분할 여부가 쟁점이 됐다. 남편 측은 “내 부모로부터 받은 특유재산이어서 아내의 몫은 없다”고 주장했으나 아내 측은 “결혼 후 함께 유지, 관리했기 때문에 내 지분도 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법원은 아내의 몫을 30%로 인정했다.

김태환 법무법인 필 변호사는 “최근 법원은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아내가 남편 사업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회사를 운영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고 재산 분할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유재산

부부가 혼인 전부터 각자 소유하고 있던 재산, 혼인 중 한쪽이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 등을 말한다. 재산 형성에 있어 상대방의 기여가 없어 보통 이혼 소송에서는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특유재산의 유지·관리·증식을 부부가 함께했다면 분할 대상에 포함돼 기여도만큼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