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경기도

쌍방울 그룹의 800만 달러 불법 대북 송금에 관여하고, 쌍방울로부터 수억 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6월형과 벌금 2억5000만원, 추징금 3억2595만원이 7일 선고됐다. 지난 2022년 10월 14일 검찰의 구속 기소 후 1년 8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는 이날 오후 이 전 부지사의 뇌물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외국환거래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의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고 이같이 선고했다. 또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이 전 부지사에 대해선 징역 15년형과 벌금 10억원, 추징금 3억3400여만원을, 방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이 전 부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이던 2019년 도지사 방북 비용 300만 달러와 북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 달러를 쌍방울이 대신 북한 측에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이 ‘경기도 대북사업 우선적 사업 기회 부여’ 등을 대가로, 이 전 부지사의 부탁을 받고 경기도를 대신해 800만 달러를 북한에 건넨 것으로 봤다.

이 전 부지사는 또 경기도 평화부지사, 경기도 산하기관인 킨텍스 대표이사로 재임했을 당시 쌍방울 측에서 법인 카드와 차량 등 법인카드 및 법인차량을 제공받고, 자신의 측근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등의 방식으로 모두 3억3400여만 원의 정치자금(뇌물 2억59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도 기소됐다.

재판부는 경기도가 지급해야 할 스마트팜 사업비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비용 등 800만 달러를 쌍방울이 북한 측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이 가운데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인정되는 불법 자금은 394만 달러로 판단했다. 스마트팜 사업비 164만 달러, 경기도지사 방북비용 230만달러가 포함됐다. 나머지 금액은 법리적으로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방용철 등과 공모해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을 대납할 목적으로 쌍방울 그룹 임직원들을 동원해 미화 230만 달러 상당을 관할 세관의 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국외로 수출, 200만 달러 상당을 금융제재 대상자인 북한 조선노동당에 지급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다만, ‘환치기’ 방법으로 70만 달러를 중국으로 반출한 부분은 ‘지급수단(정부지폐, 은행권, 주화, 수표, 우편환, 신용장 등) 휴대 수출 행위’로 볼 수 없고, 북한 측 대리인을 통해 조선노동당에 지급한 혐의에 대해서는 “실제로 조선노동당에 지급했거나, 지급할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스마트팜 비용으로 500만달러를 북측에 지급한 혐의에 대해서는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할 목적으로 쌍방울 그룹 임직원들을 동원해 미화 164만달러 상당을 관할 세관의 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국외로 수출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다만 환치기 방법을 통한 180만 위안 반출, 북한 조선노동당 지급 부분에 대해서는 실제로 조선노동당에 지급했거나 지급할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평화부지사 재임 기간에 방용철 등으로부터 법인카드를 제공받아 사용하거나 자신의 측근인 문모씨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1억여원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쌍방울 임직원들의 진술, 신용카드 사용내역, 경기도 내부 문건 등에 의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킨텍스 대표이사 재직 기간에 법인카드와 법인차량을 제공받은 부분은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또 이 전 부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선거캠프 비서실장, 용인갑 선거구 지역위원장 재직 시절에 쌍방울 측으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을 제공받아 2억여원의 정치자금을 부정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부지사 취임 전 일부와 부지사 재직 기간의 정치자금 부정 수수는 정치자금법이 규정하는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직원에게 내부 PC 하드디스크를 파쇄나 교체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자신이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을 교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하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함에도 자신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기업을 무리하게 동원했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자금을 무모하게 지급해 외교·안보상 문제를 일으켰다”며 “비록 남북 교류협력사업의 추진이라는 정책적 목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장기간 뇌물 및 정치자금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원받아 온 피고인의 행위는 상당한 정치적 경력을 갖춘 고위 공무원으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유력 정치인과 사기업 간의 유착관계의 단절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 왔음에도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약 28년전 다른 범죄로 벌금형으로 처벌받은 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에 대해서는 이 전 부지사에 대한 1억여원의 뇌물 공여, 2억1830만원의 정치자금 부정 기부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입혀 업무상 배임이나 횡령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이 전 부지사와 공모해 미화 394만 달러 상당을 국외로 반출, 이 가운데 200만달러 상당을 조선노동당에 지급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다른 범죄로 7번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 이외에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범행이 이화영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측면이 있고 실질적 결정권한을 가진 김성태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범행으로 가담한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