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셜미디어에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 경우 그 재판이 중단되는 걸까”라는 글을 올리며 ‘헌법 84조’를 언급했다. 이화영씨 유죄 판결로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형사 소추(訴追)를 받지 않는다’는 불소추 특권 대상이 되는지 물음을 던진 것이다. ‘헌법 84조’를 놓고 법학계와 법조계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법률 전문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들어봤다.

◇ “불소추가 재판 면제는 아니다”

왼쪽부터 황도수 교수, 신평 전 교수, 김상겸 교수

형사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에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조인과 법학자들은 대통령의 불소추(不訴追)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에서 ‘소추’는 검사의 기소 단계까지만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취임 전에 기소된 재판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평 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에 나오는 ‘소추’는 기소와 사실상 같은 단어”라고 했다. 신 전 교수는 “이 헌법 조항은 현직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범죄를 기소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이 되기 전 기소된 재판은 계속 진행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대통령 재임 중 집행유예 이상의 유죄가 확정되면 대통령직을 상실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다만 신 전 교수는 “대통령의 재임 중 기존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해석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법원이 재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민 선택으로 대통령이 됐는데 원칙대로 재판해 유죄를 선고할 판사나 재판관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10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 명예교수는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재판은 그 신분과는 별개로 계속돼야 한다”며 “대통령이기 때문에 재판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사법부 관점에서 보면 ‘적법 절차의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현직 대통령도 수사 대상은 될 수 있다. 수사로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기소를 못 한다는 게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지, 대통령이 되기 전 재판까지 멈추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는 사법기관인 법원과 준사법기관인 검찰이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의 직무 중 일탈을 문제 삼아, 임기 수행을 막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이 조항을 확대 해석해서 대통령 재임 전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재판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통령 특권을 과도하게 넓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헌법 84조 논란’이 불거진 배경으로 법원의 ‘재판 지연’을 지적했다. 황 교수는 “다음 대선이 2년 넘게 남았는데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법원이 재판을 너무 길게 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22년 9월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총 6개 사건, 8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건도 1심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대통령 법정 안세우는게 法 취지”

왼쪽부터 김선택 교수, 노희범 변호사, 차진아 교수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에 대해 “헌법 조문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최대한 임기를 보장해야 하고,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않아야 한다’는 입법 취지를 고려해 당선 전 기소된 재판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의 취지를 보면, 형사 소추는 결국 형사 재판을 개시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며 “이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 재판을 못 하게 하는 것이므로, 곧 진행 중인 재판도 멈춰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대표가 범죄자로 재판을 받으면서 어떻게 국가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느냐”며 “국내외적 신뢰 추락은 물론 국정 운영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재판도 중단된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차 교수는 “헌법학자로서 현재 상황(헌법 84조 논란)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차 교수는 “이 조항은 재판을 받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는 상황 자체를 전제하지 않고 만든 것 같다”며 “법치주의 관점에서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며, 법치주의의 위기”라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84조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형사 재판으로 리더십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형사 소추의 범위에 재판이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선 전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임기 중엔 그 재판을 ‘일시 정지’하고 국정 운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만 임기 중 ‘재판을 안 받는 것’뿐이지, 임기 후엔 다시 원칙대로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84조는 과거 마그나카르타 등 입헌군주제 시절부터 있었던 조항으로, 군주와 군주 가족의 신병은 확보하지 못하도록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진 군주정의 유산”이라며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직무 수행에 방해를 받지 않게끔 하는 차원의 조항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현재 1심에서 30여 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이 났는데, 재판 확정 전 대선을 치르게 될 예정이어서 이런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면서 “이재명 대표도, 국민들이 세세한 범죄 사실을 다 아는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면 재판을 멈춰 직무 수행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대선 전에 확정 판결이 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헌법 84조

대통령의 임기 중 불소추(不訴追) 특권을 규정한 헌법 조항이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곤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신분과 권위를 유지하고 국가원수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소추(訴追)

형사 사건에서 검사가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해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고위 공무원에 대해 탄핵안을 결의해 헌법재판소에 파면을 구하는 것도 소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