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이화영(맨오른쪽)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김성태(왼쪽에서 둘째) 전 쌍방울 회장이 중국 선양에서 북한 조선아태위 송명철(오른쪽에서 둘째) 부실장, 국내 민간 대북 단체인 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맨왼쪽) 회장 등과 술자리를 하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1심 판결문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104번 언급된 것으로 11일 전해졌다. 292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추진 동기에서부터 쌍방울의 800만달러 송금 사실, 이런 과정에서 이 대표가 관여한 정황 등이 상세하게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판결은 기소가 예정돼 있는 이 대표의 제3자 뇌물 혐의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 사건에 중요한 증거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방북 추진 동기 있었다”

본지가 취재한 판결문 내용을 종합하면, 수원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신진우)는 “이화영씨가 이 대표의 방북을 강력하게 추진할 동기가 있었다”고 했다. 2018년 9월 열린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서 이 대표가 제외되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포함되면서 ‘차기 대권 주자는 박원순’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경기도 대북 사업 실무를 총괄하던 이씨가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재판부는 인정했다.

그래픽=양진경

재판부는 2018년 10월 경기도가 “북한과의 6개 합의 사항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지사가 방북한다”고 발표한 뒤 이듬해 12월까지 지속적으로 경기지사 방북을 추진했다고 봤다. 2019년 3~4월엔 어린이 영양식과 말라리아 방역물품 전달을 이유로 방북을 검토했고, 그해 6월엔 ‘쌀 10만 톤’ 지원을 약속하며 북한에 방북 초청을 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9월엔 태풍 피해복구 협력, 11월엔 민족협력사업 회의 등을 명목으로 방북 초청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2019년 7월 경기도가 주최한 필리핀 행사에서 이씨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송명철 북한 조선아태위원회 부실장 등이 나눈 대화도 사실로 인정했다. 당시 송명철이 “문재인 대통령이 왔을 때는 공항에 김영철, 최룡해 둘 중에 한 명이 나왔는데, 이재명 지사가 오면 둘 다 공항에 나오도록 하고, 문 대통령이 갔던 백두산에도 최신형 헬리콥터, 차량으로 가게 하겠다”며 “문 대통령이 왔을 때보다 더 크게 행사를 치르겠다”고 약속하자, 이씨가 “좋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당시 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 당선무효형(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아 방북을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아 대법원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고, 2심 후에도 경기도는 북한에 두 차례 이 대표의 방북 공문을 보낸 점을 볼 때 이런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재명에 보고” “이재명과 통화” 인정

판결문에서는 이 대표가 ‘대북 송금’에 관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김 전 회장 등 관련자들의 진술이 상당부분 사실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대표에게 스마트팜 사업비 대납 등의 사실이 보고가 됐고, 이 대표와 두 차례 통화했다’는 김 전 회장 진술은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사실관계와 모순되지 않아 신빙성 있다”고 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1월 조선아태위와 경제 협력 협약식을 맺을 당시 이씨가 전화를 바꿔줘 이 대표와 통화하게 됐으며,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같은 해 7월 북한에 방북비를 줬을 당시 김 전 회장은 이씨가 연결해 이 대표와 통화할 때 “저도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 전 회장이 2018년 12월 이씨에게 ‘이재명 지사에게 보고했냐’고 했을 때 이씨가 ‘당연히 그쪽에 말씀드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반복해 진술한 것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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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800만달러 대북 송금 인정해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 이 대표 방북 비용 30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를 송명철 등 북한 측에 보냈다고 인정했다. 이중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달러와 방북비 200만달러는 북한 측의 영수증도 받았다고 한다. 방북비 200만달러는 조선노동당으로 전달된 사실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영수증이 없는 방북비용 100만달러의 경우, 북한 국가보위성 공작원 리호남에게 전달됐으며, 이 돈은 리호남이 개인적으로 북한 상부에 충성자금으로 줬다는 김 전 회장의 증언도 사실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