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가족과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지난 2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피해자 일부 승소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전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추가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서 2심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옥시레킷벤키저, 세퓨 등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이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이 2014년 제조·판매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소송들 가운데 하나다. 원고들은 환경부가 1997년과 2003년 살균제 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에 대해 각각 유독 물질이 아니라고 고시(告示)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2016년 11월 1심 판결에선 기업의 배상 책임은 인정됐으나 국가 배상 책임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因果)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조사의 배상 책임은 있다고 판단했지만 “공무원의 위법 행위가 없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지난 2월 국가가 원고 5명 중 3명에게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 물질의 유해성 여부에 관해 충분히 검증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 해 집단적 폐 손상이라는 피해를 발생시켰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1심 판결을 7년여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건물. /조선일보 DB

그러면서 “당시 환경부 장관 등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화학물질이 음식물 포장재 등의 용도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유해성이 낮고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적어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심사·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화학물질이 포장재 용도 외에 사용되거나 최종 제품에 다량 첨가되는 경우에 관한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안전성도 검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심 판결에 대해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를 제기했으나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면서 2심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이번 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다른 피해자들도 소송을 제기해 위자료를 지급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규모는 7900명 정도이다.

환경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필요한 후속 조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