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6월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연합뉴스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인이 성관계를 한 경우, 합의가 있더라도 강간으로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것만으로도 강간죄를 적용하는 ‘미성년자 의제강간죄’(형법 305조 2항)에 대한 위헌제청‧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가 도입된 후 나온 첫 헌재 판단이다.

이 조항은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엄벌(嚴罰) 여론이 높아진 2020년 도입됐다. 개정 전에는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했을 때 강간 등을 적용해 처벌했는데, 연령 기준이 13세 이상~16세 미만으로 높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13~15세 청소년과 성관계를 해 기소된 19세 이상 피고인들은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관련 사건을 심리 중인 대구지법에서도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청구인들과 법원은 “해당 조항은 피해자의 연령이나 신체적·정신적 성숙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구체적인 인적 관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강간죄 등과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으로 성인이 13세 이상 16세 미만인 사람을 성행위의 상대방으로 선택할 수 없게 되고, 개인의 내밀한 사적 생활 영역에서의 행위를 제한받는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러나 헌재는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사람도 13세 미만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며 “설령 (16세 미만 청소년이) 동의에 의해 성적 행위를 한 경우라고 해도 이는 성적 행위 의미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온전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에 의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최근 13세 이상 16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인터넷 채팅이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청소년에게 접근해 환심을 산 뒤에 성행위에 응하도록 하는 그루밍 성범죄가 만연하고 있다”며 “날이 갈수록 수법이 정교해지고 있는 온라인‧그루밍 성범죄로부터 16세 미만의 청소년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처벌 조항이 일률적으로 연령을 규정한 데 대해서는 “각 행위마다 정확한 불법의 크기를 측정해 법정형을 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성범죄 추세나 특정 연령 집단의 보편적인 특성을 고려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위를 연령에 따라 유형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령이 경계선에 있거나 참작할 정상 관계가 있는 사건들의 경우 법관의 양형을 통해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