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조선일보 DB

이른바 ‘주식 리딩방’ 계약이 불법이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한 위약금 합의까지는 무효로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증권정보 제공업체 A사가 전 고객 B씨를 상대로 낸 약정금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는 2021년 12월 A사에 가입금 1500만원을 내고 ‘증권정보제공 VVIP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A사는 특약사항으로 6개월 후 누적수익률이 700% 미만이면 B씨에게 추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누적수익률 200% 미만이면 B씨에게 이용요금 전액을 환불해주기로 했다. 투자자가 입을 손실을 보전해주거나 일정한 이익을 보장하는 전형적인 불법 ‘주식 리딩방’ 이었다.

B씨는 2022년 3월 16일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A사는 B씨에게 533여만원을 환불해준 뒤, 향후 B씨가 환불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A사에게 환불금의 2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B씨는 가입금의 나머지인 966만원도 신용카드 회사에 결제 취소해달라고 요구해, 결국 가입금 1500만원을 전부 환불 받았다. 이에 A사는 B씨가 합의를 위반했다며 환불금의 2배(1060만원)와 카드사로부터 환불받은 966만원을 합쳐 2000여만원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A사가 유사투자자문업으로 신고했을 뿐, 공식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므로 계약과 합의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1·2심은 합의서가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계약을 전제로 해 B씨가 A사에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 17조는 특정 개인에게 투자 자문을 하려면 ‘금융투자업’을 등록하도록 규정하는데, A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 조언을 할 수 있는 ‘유사투자자문업’을 신고한 뒤 B씨에게 자문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또 같은 법 55조는 손실보전 또는 이익보장을 금지하는데, A사는 최소 200%의 수익률을 보장했다는 점이 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은 자본시장법 17조를 불법 행위는 처벌하되 계약 효력은 인정하는 ‘단속 규정’으로 판단했다. 즉, 주식 리딩방이 불법이라 해도, 이 리딩방 계약에서 파생된 위약금 합의의 효력까지 무효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은 고객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투자업을 건전하게 육성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인데, 이를 위반해 맺은 계약 자체가 사법상 효력까지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반도덕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금융투자업자와 고객 사이가 아니라 유사투자자문업자에 불과한 원고 등 사인들 사이에 이뤄진 손실보전·이익보장 약정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55조를 유추 적용할 수 없고 약정 효력을 부인할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5월 유사수신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계약에 따른 배당금 배분까지는 효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단속 규정’에 대해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