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6월 심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위해 입장한 뒤 자리에 앉아있다./연합뉴스

한 사업장에 여러 노동조합이 있을 때 대표 노조를 정해 사측과 협상하게 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7일 이 같은 내용의 노동조합법 제29조 제2항 등에 관한 위헌 소원에서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지난 2012년 같은 조항에 대해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설립됐을 때, 대표 노조가 사용자와 근로조건 등을 협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0년 노조법 개정으로 복수 노조 제도와 함께 도입됐다. 노조법은 자율적으로 교섭 대표를 정하지 못하면 조합원 과반이 속한 노조를 대표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전국금속노동조합, 노조원들은 해당 조항들이 협상 대표가 되지 못한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에서 협상이 지연되고, 소수 노조가 대표 노조에 종속되며, 노노(勞勞)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김형두‧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다수 의견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교섭 절차를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조합원 근로조건을 통일한다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며 “대표가 아닌 노조도 교섭대표를 통한 단체교섭권 행사의 결과를 함께 향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수 의견은 또 “대표가 되지 못한 노조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와 대표에게 ‘공정대표 의무’를 부과해 다른 노조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반 노조가 대표가 되도록 하는 조항에 대해 다수 의견은 “보다 많은 근로자가 속한 노조가 대표로 교섭하게 하려는 것으로 그 자체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2개 이상의 노조가 위임, 연합 등 방법으로 과반수 노조를 구성할 수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요건도 충족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은애·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헌법불합치를 선고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제도적 조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의 독자적 단체교섭권 행사를 전면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소수 의견은 “현행 노동조합법은 교섭 대표와 사용자가 잠정 합의한 단체협약안을 확정하는 절차에 소수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을 두지 않고, 단체 교섭에서 소수 노조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방법이나 수단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절차적 참여권이 제대로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의 합헌 결정에 대해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전국금속노조는 성명을 통해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동자가 받은 피해와 권리 침해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며 “사법기관에 기대지 않겠다. 금속 노동자의 투쟁으로, 총파업으로 마침표를 찍겠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헌재의 결정은 국제노동기구 의장국인 대한민국이 국제 기준을 위반한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