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스1

산업재해 보험금 지급 기준이 되는 ‘특례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정부 보고서에 담긴 통곗값을 임의로 조작‧활용해 새로운 수치를 도출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 등 2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평균임금 정정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이 사건은 A씨 등이 귀금속 세공원으로 일하다가 퇴직 후 진폐증 진단을 받은 것이 발단이다. 공단은 A씨 등에게 2005∼2006년 장해등급을 부여하고, 지급할 보험급여를 산출하기 위해 산재 특례 평균임금을 산정했다.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이 보험금을 받을 때 일반 평균임금을 적용하는 것이 근로자 보호 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산재법상 특례 평균임금이 적용된다.

산재보험법에 따라 공단은 특례 평균임금을 산정할 때 정부에서 발간하는 월별 노동통계조사보고서를 참고한다. 보고서에는 업종, 사업장 규모, 직종, 성별 네 가지 요소가 적정히 반영된 세 가지 통계가 제시됐다. 첫째는 제조업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을 ‘10~29인’, ‘30~99인’, ‘100~299인’, ‘300~499인’, ‘500인 이상’ 등 사업장 규모별로 세세하게 구분한 통곗값, 둘째는 ‘10인 이상’, ‘30인 이상’으로 구분한 통곗값, 셋째는 ‘중소규모(10~299인)’와 ‘대규모(300인 이상)’으로 구분한 통곗값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직종(생산직 여부)과 성별(남녀)을 동시에 고려해 분류한 세부 통계가 있었다. 반면 첫 번째 통계는 성별을 제외하고 직종만 반영되거나, 직종을 제외하고 성별만 반영된 세부 통계가 있었다.

공단은 이 가운데 성별 반영 없이 사업장 규모를 세부적으로 분류한 첫 번째 통곗값을 적용해 특례 평균임금을 산출했다. A씨 등이 근무한 사업장은 ‘10~29인’에 해당하는 만큼, 가장 세부적으로 사업장 규모를 나눈 첫 번째 통곗값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에 A씨 등은 남녀 성별에 따른 차이를 반영한 통곗값을 사용해야 한다며 정정 신청을 했다. 남성 근로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평균임금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취지였다. 공단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을 냈다.

1, 2심은 “재해 근로자가 월별 노동통계조사보고서상 어디에 해당하는지 정할 땐 업종, 규모, 성별, 직종이 가급적 모두 고려돼야 한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성별과 직종까지 고려된 두 번째 통곗값의 ‘1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 임금 총액을 제외하면 ‘10~29인’(규모), 성별, 직종 등을 모두 적용한 특례 평균임금을 산출할 수 있는데 이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령이 보고서상 통계를 사용하도록 규정하는 이상, 조건이 비슷한 근로자를 찾을 땐 보고서의 통계조사 항목에 따른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무리하게 네 요소가 모두 반영된 값을 도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고서에 제시된 통곗값을 사용하지 않고 구분 기준과 조사 항목이 다른 여러 통곗값을 활용해 새로운 수치를 산출할 경우 오류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심처럼 특정 기준(성별)을 충족하기 위해 보고서의 통곗값을 임의로 조작하면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구체적 사안에서 특례 평균임금을 실질을 반영해 적정하게 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