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同性) 커플의 상대방을 사실혼 배우자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받아줘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민법상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동성 결합’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지난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모습./뉴스1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8일 소성욱(33)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피부양자 등록 취소가 부당하다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 대법관 9명은 다수 의견을 통해 “동성 동반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법관 4명은 “동성 간 결합은 혼인으로 볼 수 없어 피부양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조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9명은 “건보공단은 사실상 혼인 관계에 있는 (이성)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 동성 동반자 집단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달리 취급하고 있다”며 “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 생활하고 서로 부양하는 동성 동반자의 관계가 기본적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수 의견은 또 “동성 동반자는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뛰어넘어 동거∙부양∙정조 의무를 바탕으로 부부 공동생활에 준할 정도의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건보공단이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했다.

남성인 소씨는 다른 남성인 김용민(34)씨와 2017년부터 동거하다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건보공단은 2020년 김씨의 신청에 따라 소씨를 사실혼 배우자로 보고 피부양자 등록을 해줬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공단은 ‘착오’라며 등록을 취소했고, 이에 소씨는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22년 1월 소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성(異性) 간 사실혼 배우자만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작년 2월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 상대방은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다를 뿐 동일한 정도로 밀접한 생활 공동체 관계”라며 “동성 결합에만 피부양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