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왼쪽)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뉴스1

이원석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감찰부에 서울중앙지검의 ‘김건희 여사 조사’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이창수 중앙지검장이 23일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감찰부의 진상 파악에 응할 수 없다”는 의견을 대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 조사 장소와 보고 시점을 놓고, 이 총장과 이 지검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지휘부의 갈등이 검찰 신뢰를 떨어뜨릴까 걱정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지검장은 이날 오후 대검에 “이미 검찰총장에게 김 여사의 조사 경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대검 감찰부의 추가적인 진상 파악이 진행될 경우 수사팀 동요로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관련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진상 파악을 미뤄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래픽=백형선

앞서 이 지검장은 지난 20일 김 여사를 서울 종로구 창성동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로 불러 조사하면서, 김 여사가 출석한 지 10시간이 지난 뒤 이 총장에게 조사 사실을 보고했다. 이 지검장은 지난 22일 오전 1시간가량 이 총장에게 제3의 장소 조사, 사후 보고 등에 대해 대면 보고를 했고, 이 자리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수차례 이 총장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김 여사를 제3의 장소가 아닌 검찰청사로 소환 조사하라”고 지시했는데도 이 지검장이 이를 어기고 보고도 하지 않았다며 이 지검장을 강하게 질책했고, 대검 감찰부에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디올백 의혹’ 수사팀의 김경목 부부장 검사가 “열심히 수사했는데 진상 조사라니 회의를 느낀다”며 사표를 던졌다.

이 총장의 진상 조사 지시에 이어 김 검사의 사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 변화가 생겼다. 이 총장도 김 검사 사표를 반려하라고 지시했고, 대검 간부들도 일선 검사들을 달래면서 지휘부 갈등을 봉합하려고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주변에 “감찰이 아니라 진상 파악을 하라고 했을 뿐이다. 평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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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김건희 여사 조사’에 대한 대검 감찰부의 진상 파악에 “당장 협조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든 것은 이원석 검찰총장의 지시를 사실상 ‘감찰 조사’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검장은 이 총장의 진상 파악 지시 후 김경목 부부장 검사가 사표를 내면서 실제로 수사팀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 중인 수사팀에 대한 조사는 이례적이다.

이 지검장은 대검 감찰부가 진상 파악을 강행한다면 “나만 조사하라”는 입장도 전했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이 지검장이 수사팀을 보호하기 위해 대검의 진상 조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진상 파악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지검장이 절차에 관한 의견을 낸 것으로 보고 계속 조율할 것”이라며 “검찰 내부의 의견 조율 절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이 총장이 김 여사 사건 처리를 미루다가 임기 말에 김 여사를 무리하게 검찰청으로 소환하려고 하다 이 사달이 났다” “이 총장이 수사팀에 화를 내고, 불화를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정치적인 행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총장은 9월 15일, 자신의 임기 내에 김 여사를 검찰청으로 소환해 관련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디올백 수수 의혹’ 수사팀은 현직 영부인을 대면 조사하는 일이 사상 처음이어서 경호상 문제 등 검찰청 소환에 어려움이 있다고 여러 차례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총장은 ‘검찰청 소환’이라는 원칙을 고집했고, 결국 수사팀은 지난 20일 총장에게 사전 보고 없이 김 여사를 제3의 장소로 불러 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총장과 이 지검장의 갈등은 김 여사 조사 다음 날인 지난 21일 오전 중앙지검이 조사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시작됐다. 검찰 주변에서 이른바 ‘받은 글’ 형식으로 “총장이 보고 없이 제3의 장소 등의 몰래 소환은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는 내용이 돌았고, “패싱당했다” “거취를 고민 중” 등 이 총장의 입장이 알려졌다. 한 차장급 검사는 “보고를 누락한 지검장을 질책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휘부 갈등을 노출시켜 검찰 조직에 큰 상처를 줬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사상 최초 현직 영부인 조사보다 검찰 내분이 더 부각돼 아쉽다”고 했다. 이튿날(22일) 이 총장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데 대해서도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인 같은 모습”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검찰 안팎에선 이 총장에 대해 “임기 2년이 다 되도록 김 여사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뭐했느냐” “선거 등을 의식해서 미루다가 임기 막바지가 돼서야 신속 수사를 지시하며 수사팀을 압박하니 충돌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 평검사는 “김 여사 수사는 총장 임기 초·중반에 할 수도 있었는데, 임기 말이 돼서야 이렇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뭔가. 퇴임 후 정의로운 모습으로 남고 싶은 것 아니냐”고 했다.

지휘 체계를 무시한 이 지검장의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부장검사는 “현직 대통령의 부인을 조사하면서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누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총장보다는 용산과 협의해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지휘부 갈등이 격화되면서 검사들 사이에서 염증을 느낀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이 총장과 이 지검장 간 갈등이 법무부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 총장은 지난 22일 이 지검장의 대면 보고를 받은 뒤 대검 참모 회의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의 수사지휘권을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복원하라는 장관의 지휘도 수사지휘권 발동에 해당한다”며 “장관은 취임 전부터 지휘권 발동은 극도로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