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2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어찌 됐든 간에 제가 이 자리까지 서 있는 건 제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제 주변을 관리하고 철두철미하게 통제했어야 했는데…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부족했다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자 등에게 식사를 제공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 중인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아내 김혜경씨가 25일 최후 진술에서 한 말이다.

지난 2월 불구속 기소 후 5개월 동안 13차례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던 김씨가 이날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그는 지난 15일 검찰의 피고인 신문에도 ‘포괄적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응하지 않았다.

이날 수원지법 형사13부(재판장 박정호)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결심 공판에서, 김씨는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약 4분 동안 진술했다. 최후진술은 재판이 종결되기 전 마지막 절차다. 김씨는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가 당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인 2021년 8월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민주당 중진 의원의 아내 등 3명과 자신의 운전기사, 수행원 등에게 10만4000원 상당의 식사를 제공해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 금지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당시 사실상 자신의 사적 수행비서인 전 경기도 사무관 배모씨에게 경기도 법인 카드로 식사비를 결제하도록 시킨 것으로 보고, 지난 2월 14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날 김씨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저로 인해서 검사님들도 긴 시간 고생했는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운을 뗐다. 그는 “저로 인한 사건으로 인해서 지난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다”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고, 또 남편이 변호사 활동도 했고, 정치인으로 비주류 정치인으로 하면서 많은 탄압을 받았다”며 울먹거렸다.

김씨는 발언 중간중간 법정 천장을 바라보며 울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김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없이 많은 압색(압수수색)도 당했고, 남편이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긴장하고 살았다. ‘꼬투리 잡히지 말자’라는 말을 남편과도 수없이 다짐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또 “정치에 입문하면서 돈 없는 선거를 치르자는 남편의 신념이 너무 강했고, 처음 2006년 지방선거에 나갔을 때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며 “밥값을 안 내고 식사 자리에 가서 ‘밥만 먹고 가냐’고 해서 밥을 안 먹고 선거운동을 했다. 차에서 김밥으로 때우던지 인사만 하고 나가던지 그랬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과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 경기도청 사무관(별정직) 배모씨가 지난 2월 1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김씨는 “식사값에 대한 의논이나 협의나 이런 것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외부에서 보기엔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검사님이 주장하시는데 그건 너무나 큰 원칙이었기 때문에 따로 얘기하거나 지시하거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당시 식사 대금 결제는 본인이 모르는 일이고, 배씨가 했다는 취지다. 김씨 측은 재판 내내 “배씨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해왔다.

김씨는 비서 배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발언했다. 그는 “배 비서는 (이 전 대표가)성남시장인 2010년부터 선거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었고, 얌전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하는 비서관이었다”면서 “(남편이)도지사에 당선되고 나선 공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어서, 제 일까지 관장해줬고, 모든 걸 배 비서관을 통해서 했던 거 같다”고 했다. 배씨는 김씨의 사적 비서로, 김씨가 있는 경기 성남시 수내동 자택에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초밥과 샌드위치 등의 각종 음식을 배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씨는 “그런데 이번 사건이 언론에 터지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며 “과연 언론에 비친 저 사람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는 배 비서인가. 혹시 다른 사람 아닌가 정말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는 “비상식적이고 선거도 해봤는데 왜 그런 일을 했는지…답답해서 눈 마주치고 물어보고 싶었다”며 “재판 과정에서 제가 모르던 여러 가지 일도 알게 됐고, (배씨가)왜 (본인)몰래 지방을 쫓아다녔나, 왜 집요하게 (자신과 관련한 사안들을 캠프 사람들에게)물었나. 왜 캠프 구성원들과 불화를 일으키면서까지 큰 소리를 냈을까. 조금은 이해를 하는데,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겠다”라고도 했다.

김씨의 최후진술에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배우자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를 대선 후보로 당선되게 하기 위해 유력 정치인들인 전·현직 국회의원 배우자를 매수하려 한 사건”이라며 “금액과 상관없이 죄질이 중하고, 자신의 수하인 배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에 대한 1심 판결은 다음달 13일 오후 2시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