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순직 해병 조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 개인 휴대전화의 통화 내역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12일 전해졌다. 수사기관이 직무를 수행 중인 현직 대통령의 통화 내역을 확보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 2017년 1월 국정 농단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대통령의 ‘차명폰’ 통화 내역을 확보한 적은 있지만, 2016년 12월 탄핵안 가결로 박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된 상태였다.

공수처 전경./뉴스1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 수사4부(부장 이대환)는 최근 윤 대통령 개인 휴대전화의 작년 7~9월 통화 내역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에서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 수사팀은 윤 대통령의 통화 내역을 분석해 윤 대통령이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등을 통해 순직 해병 사건의 초동 조사 기록을 이첩 및 회수하는 데 관여했는지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통신 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수차례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모두 기각했다고 한다. 공수처 차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송창진 수사2부장은 지난달 26일 국회에 출석해 “제가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공수처에서) 청구한 통신 영장이 다 기각됐다”고 했었다.

수사팀은 앞서 청구한 영장과 달리, 통화 내역 범위를 지난해 7~9월로 좁혀 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이번에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이 기간은 고(故) 채수근 상병이 순직한 때부터 국방부가 경찰에서 해병대 수사단이 이첩한 자료를 회수해 재이첩할 때까지다.

이 사건은 작년 8월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초동 조사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임성근 전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려다가 상부로부터 보류 지시를 받았고, 이를 어기고 이첩한 자료를 국방부가 경찰에서 되찾아오면서 불거진 의혹이다. 당시 국방부는 지시를 어긴 박 전 단장을 항명죄로 기소했고, 임 전 사단장 등을 뺀 대대장 2명의 혐의만 적시해 조사 기록을 경찰에 다시 넘겼다.

이즈음 이 전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수차례 통화한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박 전 수사단장은 ‘대통령 격노설’을 주장한다. 결국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 등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에서 임 전 사단장을 제외시키도록 외압을 행사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인 것이다.

법조계에선 “기소할 수 있는 범죄인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는 것이 적절하냐”는 반응도 나왔다. 한 법조인은 “윤 대통령이 개입했더라도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한데, 대통령을 상대로 통신 영장을 발부받는 것이 적절한지 공수처가 신중하게 검토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 한 관계자는 “통신회사에서 통화 내역을 보존하는 기한이 1년이기 때문에, 사라지기 전에 확보해 놓는 차원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