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청사 전경. / 뉴스1

‘경기도 공문 유출’ 등 혐의로 재판을 받는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지난달 법원에서 ‘엄중 경고’를 받았다. 신 전 국장은 이 사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과 접촉하지 않는 조건 등으로 지난해 11월 보석됐는데, 지난 6월 이 전 부지사 관련 민주당 기자회견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보석(保釋·보증석방)으로 풀려난 피고인들이 근신은커녕 대놓고 보석 조건을 어기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보석은 구속된 피고인에게 보증금을 받거나 보증인을 세워놓고 거주지와 사건 관련인 접촉 제한 등 일정한 조건을 걸어 풀어주는 제도다. 하지만 석방 후 사건 관계인과 말을 맞추거나 도주할 우려도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봉투’를 살포한 혐의 등으로 작년 12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는 지난 5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석방 다음 날 바로 광주광역시 5‧18 묘역을 참배했는데 이때 사건 관계인 2명이 그를 따라다녀 논란이 됐다. 검찰은 석방 후 재판에서 “보석 취지를 볼 때 적절하지 않다”고 했고, 송 대표는 “이런 우려는 충분히 참고하겠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무차별적으로 사람과 접촉하는 것에 대해 신경 쓰라”고 당부했다.

송 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해 정부를 규탄했고, 앞서 지난 6월 7일에는 광주지검·고검 앞 ‘검찰탄압 규탄 국민행동’ 집회에 참석해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를 받는 피고인이 보석 후 정치 활동으로 검찰과 정부를 압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대장동·위례·백현동·성남FC’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도 지난 6월 ‘자정 전 귀가’ 보석 조건을 어겨 재판부에서 “경각심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 전 실장은 작년 4월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도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받던 2021년 보석 조건을 위반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법원이 주거지를 경기 남양주 자택으로 제한했는데, 최씨가 한 유튜브 관계자에게 “양평과 서울을 오간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당시 최씨 측은 “언론과 유튜버 등의 취재가 너무 심해 낮에 다른 곳에 가 있다가 밤늦게 귀가했을 뿐, 주거지를 어기지 않았다”고 해명했었다.

법조계에선 현행 구속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검찰 한 관계자는 “쟁점이 복잡한 정치 사건 등은 구속 기한 6개월 내 심리도 못 마치는 경우가 허다한데, 중간에 보석까지 해주니 밖에서 재판을 흔드는 일들이 생긴다”면서 “예상 재판 기간에 따라 구속 기간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직 부장판사는 “6개월 구속 기간이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의 구속 기간을 늘리자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