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축구계에서 사실상 퇴출된 선수의 영구 제명 처분이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충분한 소명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등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이유다.

대한축구협회. /뉴스1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정현석)는 지난 6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이모씨가 “제명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며 대한축구협회(협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최근 법원에선 이 같은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

◇승부조작 가담한 것이 발단

이 사건은 협회 산하 연맹단체인 한국프로축구연맹(연맹)이 이씨 등을 비롯한 선수들의 승부조작 혐의가 적발되자 지난 2011년 8월 상벌위원회를 열어 전·현직 프로 축구선수 47명에 대해 금품수수 및 승부조작을 이유로 K-리그 선수자격을 영구 박탈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연맹은 징계대상자에 대한 직무자격 상실의 범위를 K-리그뿐만 아니라 축구계 전체로 확대 적용해달라고 협회에 요청했고, 협회는 그해 10월 징계위원회를 개최해 이씨 등에 대해 영구제명을 결정했다. K-리그 및 축구 단체 임직원 및 에이전트 등 협회 관할 범위 내 어떠한 일에도 종사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당시 협회는 “프로축구 승부조작 가담자 47명에 대해 축구계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했다.

이후 이씨는 형사재판에 넘겨졌고,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대법원에서 2013년 5월 확정됐다. 연맹은 2013년 7월 이씨의 가담 정도가 경미한 ‘단순 가담’으로 보고 협회에 징계감경을 요청했지만, 협회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조선일보DB

◇재판부 “징계 과정에서 중대한 절차상 하자 있어”

이씨는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작년 9월 “제명 처분 당시 협회가 징계위원회 개최사실을 통지하지 않고 의견을 밝힐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징계는 협회의 상벌규정에서 정한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서 “이씨에게 상벌위원회의 개최사실을 통지하지 않았고 출석 및 의견 진술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징계심의 결과도 통보하지 않고 징계처분의 존재 여부조차 알리지 않는 등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이씨가 협회 상벌 규정에서 정한 소명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고, 재심청구나 이의신청 기회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어 “협회가 이씨에 대해 한 제명 처분의 징계가 연맹의 징계처분과 별도의 새로운 처분인 이상, 설령 이씨가 연맹의 징계처분 당시 소명기회를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협회의 징계처분과 관련한 위 하자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원에서 무효화되는 영구 제명 처분

법원은 최근 이 같은 취지의 판단을 계속 내리고 있다. 이씨가 소송을 낸 배경에도 선례(先例)가 될 만한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같은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영구 제명 처분을 받은 또 다른 선수 출신 3명(임모씨, 김모씨, 박모씨)은 비슷한 취지로 제명 처분 무효 확인 소송을 2021년 4월 냈다. 이들은 1심에서 승소한 뒤 작년 3월 대법원에서 판결을 확정 받았다. 이씨는 작년 9월 이 소송을 냈다.

이씨를 대리한 장종현 변호사는 “이 사건에 연루된 것 자체에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아무래도 생계와 관련된 일이라 이렇게 소송을 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이 사건 징계가 있은 후 지도자, 선수, 심판 등 협회가 관할하는 직무 등에 종사할 수 없게 돼 생계에 곤란을 겪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당시 영구 제명 처분을 받은 선수들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명예 회복’을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