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이른바 전주(錢主) 손모씨가 12일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추가한 ‘주가조작 방조’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이다. 손씨의 유죄판결이 역시 전주 의혹을 받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 처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권순형)는 이날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손씨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에게 전원 유죄판결을 내렸다. 주범인 권 전 회장과 주가조작꾼 김모씨, 공범인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 등도 1심처럼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권 전 회장이 2009~2012년 주가조작 세력을 이용해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이 골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처럼 주가조작이 벌어진 시기를 다섯 단계로 나눈 뒤, 1단계는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免訴) 판결을 하고, 2010년 10월 이후 혐의만 유죄를 인정했다.

그래픽=김하경

이번 재판의 최대 관심사는 주가조작꾼 김씨의 권유로 도이치모터스 주식 75억여 원 상당을 매집한 전주 손씨의 유무죄였다. 김 여사도 이들의 주가조작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손씨는 자신과 아내, 회사 명의 계좌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직접 매집해 주가조작에 가담∙공모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전주는 맞지만 시세조종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에서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추가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익을 보려고 주가조작을 도왔다고 본 것이다.

2심은 손씨가 주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1심 결론에는 동의했지만 방조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손씨는 김씨 등이 시세조종을 하고 있는 사실을 충분히 알았고, 그들 요청으로 주식을 대량 매수했다”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시세조종을 도와주기 위해 자금을 동원해 인위적 매수세를 형성한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에서 김 여사도 손씨와 마찬가지로 주가조작에 전주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들의 1·2심에서는 김 여사가 여러 개의 계좌를 맡겨 40억여 원의 주식을 매매했고, 이 중 3개 계좌가 주가조작에 쓰인 사실이 인정됐다. 이런 거래로 김 여사는 총 13억9000만원의 이익(한국거래소 분석)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주식 거래 방식, 작전 세력과의 공모 여부 등은 손씨와 차이가 있었다. 손씨는 차명 계좌를 동원해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하고,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주가조작 ‘선수’인 김씨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의 요청에 매입·매도 시점을 늦추기도 했고, 손실을 보면 김씨에게 항의도 했다고 한다. 손씨는 결과적으로 1억900만원을 손실 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김 여사는 권 전 회장이나 이 전 대표 등에게 매매를 일임(一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 매매 때 작전 세력과 연락을 주고받은 직접 증거도 아직까지 확보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전 세력도 “김 여사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심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김 여사에 대한 처분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 했다.

검찰 수사는 2020년 4월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여사를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19개월 수사 끝에 2021년 말 권 전 회장 등 9명을 기소했으나 김 여사는 기소하지 못했다.

이후 검찰은 김 여사를 계속 수사해 왔다. 관련자 150여 명을 조사하고, 6차례에 걸쳐 50여 곳을 압수 수색했다. 김 여사는 두 차례 서면 조사했고, 지난 7월에는 대면 조사도 했다. 검찰은 지난 7일에는 김 여사의 모친인 최은순씨도 소환 조사했다. 김 여사 측은 “주가조작꾼에게 속아 계좌를 맡겼다가 회수했다. 주가조작을 하는 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