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간첩단 사건으로 기소된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관계자들. /뉴스1

북한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반국가 활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조직원 4명이 지난달 23일 1심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낸 것으로 1일 전해졌다. 이들에게 국가보안법·형법이 적용됐는데, 일부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은 멈추게 된다. 법조계에선 “국보법 위반 사범의 재판 지연 시도에 법원이 휘둘려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자통 조직원들은 2023년 3월 구속 기소됐지만, 1년 7개월간 유무죄를 가리는 정식 재판은 단 두 차례만 열렸다. 이들이 국민참여재판, 재판부 기피 등을 잇따라 신청하면서 재판을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들은 작년 12월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처음 이 사건을 심리하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 자통 조직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창원지법으로 사건을 이송했는데, 창원지법은 6개월간 쟁점·증거를 정리하는 준비 기일만 세 차례 열었을 뿐이다. 한 법조인은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집중 심리가 필요하다’며 창원지법으로 보냈는데, 이후 한 차례도 정식 재판을 못 했다는 게 황당하다”고 했다.

자통뿐만 아니라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에 포섭된 다른 국내 지하 조직 사건 재판도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4월 기소된 제주 ‘ㅎㄱㅎ’ 조직원들은 지난 7월 제주지법에 1심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고, 이후 재판이 멈췄다. 제주지법은 4일 만에 이를 기각했는데, 피고인들의 항고를 접수한 광주고법이 62일째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광주고법이 항고를 기각하더라도 피고인들이 대법원에 재항고할 가능성이 높아 재판 지연은 이어질 전망이다. 작년 5월 기소된 경기 수원의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을 심리 중인 수원지법은 지난 3월 ‘캄보디아 현지에 사실 조회 신청을 해달라’는 피고인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5개월간 재판을 멈추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검찰이 이 사건 피고인들과 북한 공작원이 접촉했다고 보는 곳이다. 결국 캄보디아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한 수원지법은 지난달 23일 결심(結審)을 열었고, 검찰은 전 민주노총 간부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내달 6일 1심 선고 예정이다.

충북 청주의 ‘충북동지회’ 조직원 3명도 법관 기피 신청 등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다 지난 2월 기소된 지 2년 5개월 만에 1심에서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재판을 빠르게 진행해 지난 7월 결심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직원들은 결심 당일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고, 대법원이 지난달 20일 이를 최종 기각할 때까지 78일이 걸렸다. 한 공안 검사는 “국보법 사범의 재판 지연은 ‘뉴 노멀’이 됐다”면서 “제지하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