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를 끼고 집을 팔았다가 전세금을 물어주게 된 집주인이 공인중개사를 상대로 “계약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공인중개사는 거래를 돕고 주선할 뿐 법률 사무까지 할 수 없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손모씨가 공인중개사 김모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손씨는 2020년 김씨 중개로 2억8000만원에 아파트를 A씨에게 팔았다. 세입자는 법인인 한국에너지공단이었고, 전세금은 2억원이었다. 손씨는 전세금 채무 2억원을 A씨에게 넘기고, 차액인 8000만원만 받았다. 그런데 손씨가 매매 과정에서 공단 동의를 받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공단은 개인 세입자와 달리 주민등록이 불가능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공단의 동의가 있어야 손씨가 넘긴 전세금 채무의 효력이 유지된다.

A씨는 공단에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아파트를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갔다. 공단은 보험사를 통해 2억원을 돌려받았고, 보험사가 손씨에게 구상금을 청구해 2억원 지급 판결이 확정됐다. 손씨도 김씨 등에게 소송을 냈는데, 1·2심이 엇갈렸다. 대법원은 “채무 인수의 법적 성격을 가리는 것은 법률 사무로 공인중개사에게 이를 조사·확인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인중개사의 직역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로 부동산 거래 관련 법적 문제는 변호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