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23명이 발생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관련해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지난 8월 2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대기 장소인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경기 화성 배터리 업체 아리셀 화재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 박순관 대표 등에 대한 첫 재판이 21일 열렸다. 이날 재판은 박 대표 측이 “사건 기록을 검토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16분 만에 끝났다.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는 이날 오후 박 대표와 그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 아리셀 직원 등 관계자 및 파견업체인 메이셀, 한신다이아 등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1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201호 법정은 아리셀 사고 유족 약 20명과 피고인들의 변호인, 취재진, 법정 질서 유지를 위해 배치된 법원 경위 등 약 40여명으로 붐볐다.

이날 재판은 공판준비기일로 진행돼 박 대표 부자 등 피고인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본 재판이 시작되기 전 절차 등을 협의하는 것으로, 피고인의 출석의무가 없다. 박 대표 부자는 지난 8월 영장이 발부돼 구속된 상태다.

이날 변호인은 “검찰의 사정으로 10월 말부터 (사건 기록)의 등사가 가능하다”며 “(사건 기록 복사에)일주일 정도는 소요될 거 같다”고 했다. 아직 기록 검토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 기록과 증거목록은 A4용지로 약 3만5000쪽 분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판부는 “기소가 9월 24일인데, 복사를 하려면 한 달이상 걸리는 거냐”며 “이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사건도 열람등사를 시작하면 거의 한 달, 한 달반이 걸린다”며 “1심에서 구속기한이 6개월인데, 변호인 선임하고 하면 한 달 반이 날아가 버리는 거 같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데 피고인이 증거 복사를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 지연이 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구조적으로 검찰 쪽에서 조속히 물적 인적 지원을 확보해 해소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했다. 이에 검찰은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다.

지난 6월 24일 오전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일차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23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연기가 치솟는 공장 건물. /뉴스1

박 대표 측 변호인은 이날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밝히지 않고, “수사기록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드리기 부적절하다”며 “객관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법리적 평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변호인은 또 “사안이 중대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공소장만 제출된 상태인데, 저희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유죄를 강하게 예단하는 게 적절한지, 또 공판 중심주의에 맞는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이날 재판이 공전한 채 끝나자, 한 유족은 법정에 남아 “우리 애 살려내”라고 소리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들은 법정 밖에서 “뭐 하는 거냐” “XXX들” 이라며 욕설을 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표는 유해·위험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해 지난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쯤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에서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치는 인명 사고를 낸 혐의를 받는다. 박 본부장은 비상구를 설치하지 않고, 생산된 전지의 발열감지 모니터링을 미흡하게 한 혐의, 또 화재 발생에 대비한 안전교육과 소방훈련 등을 실시하지 않는 등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 등을 받는다.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은 무허가 파견업체인 메이셀, 한신다이아 소속 근로자 230명을 아리셀의 직접생산공정에 허가 없이 파견한 혐의도 있다.

아리셀은 매년 적자가 발생하자, 무리한 생산을 감행해오면서 안전·보건 예산을 줄이고, 담당 인력도 감축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파견업체로부터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파견받아 안전교육 없이 고위험 공정인 전지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지 발열검사를 생략하고, 여러 전지들을 한 곳에 적재하는 등 안전관리체계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전지가 연쇄폭발하며 화재가 커졌고, 대규모 인명피해를 불러왔다고 봤다.

아리셀은 생산 편의를 위해 방화구획 벽체를 임의로 부수고, 대피경로에는 가벽을 설치하는 등 허가 없이 구조를 변경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8월 11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 49재에서 유가족들이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