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검찰이 재판 중 공소시효가 지난 죄명을 피고인에게 적용해달라고 요청하고, 하급심이 이를 받아줘 유죄가 나온 판결이 대법원에서 바로잡혔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최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에 대해 “공소시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깨고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공소시효가 지난 혐의에는 면소(免訴) 판결을 내리거나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어야 하는데, 고법에서 이를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약사가 아닌 약국 직원 출신 A씨는 2016∼2021년 경남·충남 지역에서 약사를 속여 면허를 대여받아 약국을 운영하다가 적발됐다. 검찰은 A씨가 자격 없이 약국을 열어 의약품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각종 문서를 위조∙행사했다고 보고 작년 6월 기소했다.

1심은 이중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를 제외한 다른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2016년 9월 약국을 개설하면서 부동산임대차계약서에 가명으로 날인을 했는데, 이를 타인 명의의 문서를 조작하는 사문서 위조∙행사 범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을 바꿔 사서명 위조 및 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이 혐의는 이미 만들어진 문서에 다른 사람의 서명만 기재해도 죄가 성립된다. 적용되는 형법 조항과 법정형도 달라진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 뒤 해당 혐의까지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검찰이 신청하고 고법이 받아준 공소장 변경이 잘못됐다고 봤다. 최초 기소 시점(2023년 6월)을 기준으로 범행 때부터 사문서 위조 및 행사죄의 공소시효(7년)는 지나지 않았지만, 변경된 사서명 위조 및 행사죄(5년)는 지났다. 대법원은 “(검찰의) 공소 제기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됐다. 원심은 공소시효 완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채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소 전 공소시효가 완성됐는데도 이를 면소로 처리하지 않고 유죄로 판단한다면 공소시효 제도를 잠탈(潛脫∙규제나 제도따위에서 교묘히 빠져나감)하는 결과가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