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검찰에 “명예훼손에 대한 범죄 사실을 특정해달라”고 다시금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법원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냈다.

지난 대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으로 허위 인터뷰를 한 혐의를 받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왼쪽)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뉴스1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22일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신학림씨,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한상진 기자의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문제 삼은 (뉴스타파) 기사의 허위사실이 뭔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기사의 어떤 부분이 허위사실인지 정리가 필요하다”며 “명예훼손에 대한 공소사실을 좀 특정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앞서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장에 문제가 있다고 수차례 지적해왔다. 재판부는 세 차례의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장에 “명예훼손과 관련 없는 간접 정황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한 차례 공소장을 수정했지만, 지난달 24일 첫 공판에서도 재판부는 “공소사실 요지에 부적절한 내용이 많다”고 또 지적했다. 지난 2일에는 재판부가 검찰에 공소장 변경·보완을 요구하는 ‘석명준비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변경된 공소장을 봐도 갸우뚱하다. 검찰이 제출한 의견서를 보고 나서야 깨우친 것도 있다”며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 사실을 검찰이 설명해야 재판부가 아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공소장에 경위사실이나 동기는 굉장히 자세한데 정작 핵심인 허위 사실은 명확히 특정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윤준(앞줄 가운데) 서울고등법원장 등 법원장들이 22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앞서 깜짝 방문한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박수치고 있다. / 이덕훈 기자

한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원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을 여러번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 “도대체 뭐가 허위인지 공소사실이 특정이 안된다며 재판부가 검찰을 지적하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황정수 서울남부지법원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황 법원장은 “솔직히 편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검찰 입장에서는 나름의 입장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것 같다”며 “법원에서 소송지휘권을 행사하면 검찰이 잘 따라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의원은 검찰의 공소장에 문제가 있어 재판부가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던 과거 사례들을 언급하며, “판사가 원칙에 따라 검사의 공소를 기각하면 안 좋은 선례들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질문했다. 이에 황 법원장은 “원래 법조가들은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린다. 논의들이 축적되다 보면 개선되리라 생각한다”고 답헀다.

김씨 등은 지난 대선을 사흘 앞둔 2022년 3월 6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대검찰청 중수2과장이던 시절, 부산저축은행 대출 브로커라는 의혹을 받은 조우형씨의 수사를 무마했다는 내용의 허위 인터뷰를 보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사실과 다른 인터뷰 내용이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 보도됐다는 점을 토대로 이들에게 대선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