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중학교는 지난 4월 긴급 교직원 회의를 열어 학생들 휴대전화를 희망자에 한해 수거할 것인지, 사용 제한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인지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교사 94%가 기존처럼 휴대전화를 조회 시간에 수거해 종례 때 돌려주자는 안을 선택해 학교 규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반대하는 이 학교 3학년 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특성화고교의 한 재학생도 학교가 아침에 휴대전화를 수거한 뒤 저녁에 돌려주는 것이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 학생은 교사가 휴대전화를 수거할 때 실제 쓰는 전화기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켜는 것도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 “휴대폰 수거는 통신 자유 침해”
국가인권위가 “학교 내 휴대전화 전면 사용 금지는 인권침해”라고 4일 밝혔다. 인권위는 한 고교생이 진정서를 낸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에 대해 “학생들 휴대전화를 조례 시간에 수거해 종례 시간에 돌려주는 학생생활규정은 헌법상 행동의 자유와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며 “해당 학교장에게 휴대전화 소지·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고 했다. 이 학교는 인권위에 “교사·학생·학부모 의견을 수렴해 개정한 학생생활규정에 따라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권위는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는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자 각종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의 의미를 가진다”며 “희망자에 한해 수거하거나,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허용하는 등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인권위는 교사가 휴대전화를 걷을 때 실제 쓰는 기계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켜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학교는 휴대전화 2대를 가진 학생들이 공기계 휴대폰을 제출하고 다른 휴대폰은 몰래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올 들어 같은 취지로 세 번째 권고
인권위가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 제한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판단한 것은 올해 들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중학교 2곳에 교내 휴대전화 소지·사용을 전면 제한하지 말고, 관련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교사·학생·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 의견을 반영해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규정을 마련했더라도 실질적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인권위 권고가 법적 강제력을 가지진 않는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하면서 인권위 권고의 위상이 이전보다 강화됐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포진한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각 학교에 인권위 권고를 따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교사들 “교실은 휴대폰과 전쟁 중”
학교 현장에서는 인권위 판단에 대해 “수업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인권위 제안처럼 수업 시작 때 휴대전화를 걷고 끝날 때 돌려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제대로 되겠느냐는 것이다. 박정현 인천만수북중 교사는 “앞으로 교사와 학생이 휴대전화 수거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등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면 불법 촬영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사이버 폭력도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휴대전화 중독에 시달리는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학교 내 휴대전화 사용이 이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8월 공개한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 습관 진단조사’에 따르면, 초등 4학년생 6만5774명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서 중독 증상을 보이는 과(過)의존 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중학생과 고교생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각각 2시간 24분과 2시간 15분으로 전체 연령층 평균(1시간 53분)보다 긴 것으로 조사됐다. 스마트폰 보유율도 중학생(95.9%)과 고교생(95.2%)이 전체 연령층 평균(85.7%)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총은 “국가인권위가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 등 교육 본질을 훼손하는 권고를 계속하고 있다”며 “교실은 휴대전화와 전쟁 중이라는 학교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