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시 A중학교는 올해 처음으로 방과 후 교실에 각종 교과서에 나오는 낱말 뜻만 따로 모아 가르치는 특이한 ‘국어 교실’을 열었다. 방과 후 교실은 주로 영어나 수학 위주로 운영했는데 교과서 진도를 나갈 때 아이들이 단어 뜻을 몰라 지장을 받자 궁여지책으로 국어 보충수업 겸 단어 풀이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사회 교사 B씨는 “문장 세 줄만 넘어가도 읽는 걸 버거워하고 앞뒤 문장을 연결시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고 말했다.
인천 만수북중은 올해부터 매일 아침 ‘아침 독서 기사단’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연’, ‘자전거 도둑', ‘걸리버 여행기' 같은 고전 작품을 국어 교사가 5분가량 요약해 읽어주고 유튜브에 담아 아이들 휴대전화로 전송해주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글을 듣고 난 뒤 줄거리와 감상을 댓글로 남겨야 한다. 프로그램을 만든 박정현 교사는 “읽기가 어렵다면 들려줘서라도 문해력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면서 “글에 몰입한다는 면에서는 읽기나 듣기가 효과가 비슷해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문해력 D등급 이하 많다”
교사들이 체감하는 학생들 문해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본지와 한국교총이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요즘 학생들 문해력 수준을 점수(100점 만점)로 환산했을 때 70점대라고 답한 교사가 37.9%로 가장 많았다. 내신 절대평가에 적용되는 등급에 따르면 ‘C등급’에 해당한다고 평가한 셈이다. 이어 60점대(D등급)라는 응답은 35.1%, 80점대(B등급)라는 응답은 15.4%였고, 사실상 ‘낙제점’에 해당하는 59점 미만(E등급)이라고 응답한 교사는 9.4%였다. 교사 10명 중 4명이 아이들 문해력이 ‘D등급 이하로 형편없다’고 답한 셈이다.
이런데도 아이들 문해력 현황을 진단하고 분석할 자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박정현 인천 만수북중 교사는 “우리나라는 전체 문맹률이 1~2%로 매우 낮다 보니 문해력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다”면서 “아이들 문해력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지 통계도 없고 연구도 부족해 정부 부처는 물론, 가정에서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받아쓰기 일기 쓰기 금지가 원인”
교사들은 ‘지식 교육’과 ‘평가’를 경시하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진보 교육감 출범 이래 10여 년간 학교에서 받아쓰기와 일기 쓰기, 독서록 등 ‘공들여 쓰는 교육’을 하나둘 없앤 부작용이란 얘기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장은 “경쟁을 부추겨 아이들 자존감을 떨어지게 한다면서 시험과 평가를 없애버리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영향으로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계층이 사실상 저소득층 자녀들이란 건 역설적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어 공부에 흥미가 생길 수 있는데 지난 10년간 학교 현장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삭제하고 있다”면서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들은 영원히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휘·쓰기·읽기·듣기 교육을 전 교과에서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독서 교육과 어휘 교육, 한자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2022년 새 교육과정에 민주시민 교육, 노동 인권, 환경·기후 문제 등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박제원 전주 완산고 교사는 “창의적·비판적 능력은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학업성취도 평가를 통해 개별 학생에 대한 문해력 진단을 실시하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중·고교생에 대해선 정부가 지원금을 주고 개인 교습이나 방학 캠프 프로그램을 듣게 하고 있다. 독일 교육부는 문해력 강화 프로그램인 ‘알파데카데’를 운영하며 책 읽어주기, 부진 학생 지원 등에 연간 200억원 이상 예산을 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