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ALEKS) 교수님'이 처음에는 실제 교수님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수학·화학 과목을 가르치는 AI 튜터 이름이었죠. 덕분에 수학 과목 성적이 많이 올라서 저도 지금은 교수님이라고 불러요.”
미 애리조나주립대의 모든 신입생은 교수보다 인공지능(AI) 튜터 ‘알렉스’를 먼저 만난다. 필수 이수 과목인 대학 수학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2015년만 해도 학생 150명이 강의실에 모여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내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 강의실엔 교수도, 조교도, 교과서도 없다. 커리큘럼을 마칠 때까지 수업과 평가는 알렉스가 도맡는다. 졸업생인 마이클 루딘(23)씨는 “모르는 문제를 질문해도 알렉스가 마치 사람처럼 즉각 답해준다. 각자 속도(pace)에 맞춰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진도가 빠른 학생은 5주 만에 종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채점·피드백 자동화, 에세이 평가 활용
학생들의 성적은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알렉스 도입 이전인 2015년 가을 학기 수학 과목에서 낙제하지 않고 이수한 수강생은 전체의 62%였는데 알렉스 도입 이후인 2018년 가을엔 79%로 늘었다. 알렉스가 도입된 수학·화학 수업에서 조교로 일했다는 홍콩 출신 케이틀린 로즈(23)씨는 “알렉스가 수업당 수백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질문을 시시각각 소화해주면서 수업 능률이 오르고 성적도 향상된 것”이라고 했다.
AI 기술은 전통적 명문대의 아성에 균열을 내고 있다. ‘맞춤형 교육’을 내건 AI가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대학 서열에도 변화를 몰고 온 것이다. 미 주간지 ‘US 뉴스&월드 리포트’가 발표하는 ‘가장 혁신적인 대학(Most Innovative National Universities)’ 평가에서 애리조나주립대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 아래로 MIT(2위), 스탠퍼드대(7위), 칼텍(8위) 등 전통적 강호가 있다.
이 평가에서 4위를 기록한 조지아 공대는 2016년부터 AI 조교를 뒀다. 컴퓨터·인지과학부 교수인 아쇼크 고엘이 IBM의 인공지능 시스템 왓슨을 기반으로 캠퍼스용 AI인 ‘질 왓슨’을 만들어 수업에 도입한 게 최초다. 대학 측은 그해 가을 AI 온라인 강좌에서 수강생 400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AI 튜터 2대와 조교 13명을 놓고 ‘블라인드(blind) 질의 응답’ 시간을 가진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로봇이 섞여있다’는 말을 듣고도 누가 사람이고 로봇인지 가려내지 못했다. 최근 학생들 사이에선 “이제는 AI가 너무 빨리, 정확하게 답해서 오히려 구분 가능할 정도”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24시간 어떤 질문에도 즉각 답변
서던뉴햄프셔대는 채점과 피드백을 AI 기술로 자동화해서 에세이 평가에 활용 중이다. 교수와 강사진은 채점에 소모하는 시간을 줄이고 학생들과 더 깊게 교류하는 데 많은 시간을 집중할 수 있다. 미국 최대의 온라인 대학인 퍼듀대 글로벌은 전체 학위 기간에 걸친 학업과 기술 습득 수준을 추적해 개인별 분석 보고서를 제공한다. 모든 학생이 단순히 졸업장만 받는 게 아니라 산업에 필요한 역량을 성공적으로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AI 튜터를 도입한 대학에선 조교나 교직원 역할을 하는 ‘AI 챗봇’도 운영한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자비스’처럼 학생마다 개인 비서를 두는 셈이다. 학사 관리, 진로 탐색 등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업무를 24시간 볼 수 있다.
미국에선 AI챗봇에 각 대학 마스코트 이름을 붙여 의인화하는 게 유행이다. 애리조나주립대의 마스코트 ‘선 데블 스파키’의 이름을 딴 AI챗봇 서니(Sunny)는 수강신청이나 장학금, 기숙사비 등 학교 생활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해준다. 서니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질문’ 리스트에 올라가는데, 2019년 8월부터 5개월간 서니가 받은 2만6000건 메시지 중 교직원에게 전달된 건 155개였다. 와이오밍대의 ‘카우보이 조(Cowboy Joe)’, 조지아 주립대의 ‘파운스(Pounce)’ 같은 AI 챗봇도 서니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