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9일 새벽 발표한 올해 ‘세계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 39곳 가운데 23곳(59%) 순위가 지난해보다 내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연구 역량을 평가한 논문 피인용 지표에서는 25곳(64%) 점수가 지난해보다 낮아졌다. QS는 “한국 대학들 순위가 내려간 주요 원인은 연구 성과 하락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각종 규제에 재정난까지 누적돼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톱 100 한국 대학 6곳 중 4곳 순위 하락
이번 평가에는 전 세계 대학 6415곳이 참여했고, 이 가운데 13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연구·교육·졸업생·국제화 등 4분야를 ①학계 평가(40%) ②논문 피(被)인용 수(20%) ③교수 1인당 학생 수(20%) ④졸업생 평판도(10%) ⑤외국인 교수 비율(5%) ⑥외국인 학생 비율(5%) 등 지표 6개로 평가했다. 4년제 대학 195곳(교육부 공시 기준) 가운데 39곳이 QS 세계대학평가 순위 안에 들었다. 100위 안에 든 우리나라 대학은 서울대(36위)·카이스트(41위)·고려대(74위)·연세대(79위)·포스텍(81위)·성균관대(97위) 등 6곳이다. 이 가운데 서울대가 지난해보다 한 계단 올랐고, 연세대는 6계단 뛰어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반면 카이스트를 포함해 대학 4곳은 지난해보다 2~9계단 내려앉았다. 100위 밖의 한국 대학 33곳 가운데 18곳은 순위가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한국 대학들의 평균 점수를 6개 지표별로 살펴보면, 교수 1인당 학생 수만 국제 평균보다 높고 나머지 지표 5개는 모두 평균 이하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가장 배점이 높은 학계 평가에서 국내 대학 평균은 40.31점으로 국제 평균(44.12점)보다 낮았고, 대학의 연구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인 논문 피인용 수도 평균 35.58점으로 글로벌 평균(37.99점)에 미달했다.
◇”뒤처진 경쟁력 만회 쉽지 않아”
세계 대학 순위는 해외 우수 교원과 학생들을 유치하고 국제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데 주요 참고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의 연구 역량 약화가 다른 지표에도 영향을 끼쳐 순위 하락이 가속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QS 평가에서 연구 영향력을 나타내는 논문 피인용 수 지표에서 작년보다 점수가 오른 국내 대학은 3곳에 불과하다. 이 지표에서 10위 안에 든 광주과기원(4위)과 울산과기원(9위)도 있지만 대다수(26개) 한국 대학은 600위 밖이다. 김우택 연세대 부총장은 “졸업생 평판도 등에 집중해 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한계에 이른 것”이라며 “결국 연구 역량이 대학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했다.
13년째 동결된 등록금을 비롯해 정부 규제로 재정난이 심화해 대학 경쟁력이 추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인성 사립대학총장협의회 사무처장은 “재정이 해마다 쪼그라들어 교육, 연구에 투자하지 못하고 기존 교원 인건비마저 줄여가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며 “약화된 국제 경쟁력을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톱 30에 아시아 6개大… 한국은 18년째 0
2003년 QS 세계대학평가가 시작된 이후 올해로 18년째 한국 대학은 톱 3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역대 최고 순위는 2014년 31위(서울대)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는 톱10 진입을 눈앞에 둔 싱가포르국립대(11위)와 난양공대(12위)를, 중국은 칭화대(17위)와 베이징대(18위)를 30위 안에 올렸다. 일본은 도쿄대(23위)가 톱 30에 들었다. MIT(매사추세츠공대)가 10년 연속 1위를 지켰고, 옥스퍼드대는 2위에 올랐다. 스탠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는 공동 3위로 집계됐다. 김보원 카이스트 부총장은 “초일류 대학이 국가 경쟁력의 척도로 평가받는 시대에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9위 경제 규모의 한국이 30위 내 대학을 내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며 “경쟁력을 끌어올릴 대책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