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신입생 정시 모집에서 인문·사회 계열 최초 합격자 중 이과생이 44.4%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수능 제도가 ‘문·이과 통합형’으로 바뀌면서 전에는 문과생들이 대부분 합격했던 학과들을 이과생들이 점령한 셈이다.

서울대학교 전경. /연합뉴스

◇일부 문과 학과는 90%가 이과생

국회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대에서 2022학년도 정시 모집 일반전형 모집단위 중 문·이과 교차 지원이 가능한 인문·사회·예체능 계열 최초 합격자 486명 가운데 수능 수학 영역 선택 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했던 학생 자료를 받았더니, 216명(44.4%)에 달했다. 통상 수학 선택 과목에서 ‘미적분’ ‘기하’를 선택하면 이과, ‘확률과 통계’는 문과로 분류된다.

학과(부)별로 보면, 경제학부가 합격자의 44%(50명 중 22명), 경영대는 43%(58명 중 25명)가 이과생이었다. 사범대 역시 국어교육과 50%, 영어교육과 63%, 지리교육과 71% 등 이과생 비율이 높았다. 자유전공학부(95%), 심리학과(89%)처럼 합격자 대부분이 이과생인 곳도 있었다. 국어국문·영어영문·철학·동양사학과 등이 속한 ‘인문 계열’도 합격자 44%가 이과생이었다. 서울대는 “유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학을 문·이과 함께 치르자 차이 나

이와 같이 이과생이 문과 영토를 대거 점령한 건 작년 처음 치러진 문·이과 통합 수능 영향이다. 문·이과로 나뉘어 공부하는 관행을 없애고 융합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인데, 입시에선 이과생보다 문과생이 불리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수학 영역은 과거 이과생은 ‘수학 가형’, 문과생은 ‘수학 나형’을 쳤고 각각 성적을 산출했다. 그런데 이번 수능부터는 문·이과생이 시험도 같이 보고 성적도 함께 산출했다. 수학 영역은 공통 22문항과 선택 과목 8문항 등 총 30문항 출제했고, 선택 과목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했다. 교육부는 수학 1등급 가운데 이과생(미적분·기하)과 문과생(확률과 통계) 비율을 밝히지 않지만, 입시업체들은 1등급 90% 가까이가 이과생인 것으로 본다.

이렇게 이과생이 문과생보다 수학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기 때문에 이과생끼리 경쟁하는 이공계 학과보다 인문·사회 계열 학과로 교차 지원을 했을 때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사례가 더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세대 컴퓨터학과와 서울대 경영대, 그리고 지방 약대와 서울대 경영대를 동시 합격한 사례들이 발견됐다. 서울대뿐 아니라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들에선 전체 인문·사회 계열 학과 합격자 중 이과생이 많게는 60% 이상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소위 ‘이과 침공’이란 말이 나올 만큼 문과생들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재수하려는 문과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적성 안 맞아 반수·휴학 늘 수도

대학들은 시선이 엇갈린다. 우선 이과생을 융합 인재로 키울 수 있다는 기대다. 경제·경영대학에선 미적분 등 이과적 소양도 필요해 이과생을 반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융합 인재’ 취지를 살리려면 문과생들도 이공계 학과에 지원할 수 있게 해줘야 형평에 맞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대부분 상위권 대학에서 이과생은 인문·사회 계열에 지원할 수 있지만, 문과생은 이공 계열 학과에 지원하지 못한다. 미적분, 과학탐구 등을 배우지 않고 이공 계열 학과에 입학하면 수업을 못 따라간다는 이유다.

적성보다 대학 명성만 보고 지원한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효완 광운대 입학 전형 전담 교수는 “수능 점수만 보는 정시 전형 학생들은 원래도 반수·자퇴 비율이 높은데, 올해 정시 정원이 크게 늘어난 데다 인문계 학과로 지원한 이과생들이 휴학·자퇴를 많이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한 사립대 입학사정관은 “전공에 관심이 없는데 대학 이름만 보고 들어오는 학생이 늘어날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이과생들이 인문·사회 계열 학과에 와서 어떻게 적응하고 공부하는지 1~2년 지켜보면서 장단점을 파악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