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ncquarelli Symonds)가 실시한 ‘2022 QS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에서 국내 주요 대학 공과대학의 경쟁력이 지난해보다 큰 폭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

15일 QS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들은 공학 분야에서 나란히 저조한 성적을 받았다. 카이스트는 작년 16위에서 20위로, 서울대는 27위에서 34위로 하락했다. 고려대(63위→76위)와 포스텍(58위→79위), 연세대(88위→96위)도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 한양대(79위→106위)와 성균관대(66위→129위)는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아시아권에서 싱가포르는 난양공대(4위)와 싱가포르국립대(7위)가 공대 ‘톱10′ 자리를 지켰고 일본 도쿄대도 20위에서 17위로 올랐다.

김경회 명지대 석좌교수는 “신기술 개발로 향후 먹거리 발굴을 뒷받침해야 할 공대의 경쟁력 저하는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 대학의 4차 산업혁명 핵심 분야 경쟁력은 세계 30~40위권으로 평가됐다. 공학 세부 전공에서 소폭 순위가 오른 대학도 있지만 세계 최상위권을 꿰찬 중국·싱가포르와 격차를 좁히진 못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와 밀접한 컴퓨터공학·정보시스템 전공에서 국내 1위는 카이스트(세계 32위)였다. 서울대가 작년보다 6계단 올라 35위를 했지만 우리나라 최상위권 대학 두 곳이 40위권에 머무른 것이다. 이 분야 1~4위를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스탠퍼드, 카네기멜런대, UC버클리 등 미국 대학이 독식한 가운데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국립대(6위)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싱가포르 난양공대(11위)와 중국 칭화대(15위)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인 우리나라에서 공대 가운데 가장 강세를 보이는 기계·항공공학에서는 카이스트가 22위, 서울대가 25위를 기록했다. 공대 세부 전공 가운데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았지만 수년째 비슷한 순위에 정체돼 있다. 아시아권 선두는 싱가포르 난양공대(7위)와 싱가포르국립대(9위)였다. 중국 칭화대(18위)와 일본 도쿄대(20위)도 ‘톱20′ 안에 들었다.

공대 순위 하락은 계속된 등록금 동결에 따른 대학의 재정 여건 악화로 시설·연구비 투자가 줄고 해외 대학과의 연구 교류가 위축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학을 옥죄는 정부 규제뿐 아니라 대학의 현실 안주 분위기도 경쟁력 하락의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과학·기술 분야는 최근 몇 년간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공계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과학고·영재학교 졸업생 중 상당수가 의약학 계열에 진학하고 있다. 작년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신규 인력은 3만여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공대의 위기’가 QS 세계 대학 평가 전공별 순위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신산업 등 역점 분야의 경쟁력을 최상위권으로 끌어 올리려면, 중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역량을 갖춘 대학에 과감하게 집중 투자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이 스스로 특성화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대학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예산을 나눠줄 게 아니라, 대학이 미래사회 요구에 맞게 교육과정과 학제 개편 등 혁신 전략을 세우면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